미스터 로이스터.
나는 당신이 최고의 인기구단 롯데 자이언츠의 사령탑으로 확정 발표 되었을때 쌍수를 들어 환영을 하였고 언론의 인터뷰에서도 이제는 한국야구도 외국인 감독을 영입해 그들의 선진 야구를 배우고 수용할 때가 되었다고 역설하였습니다. 또 시즌을 보내면서 당신의 인화력을 높게 평가하였고 운동장에서 당신의 매너를 주목했습니다.
내가 당신의 그라운드 매너에 많은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나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서 2년간 야구 유학을 하면서 모든 선수교체는 감독이 직접 나가서 해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한국에 와서 그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을 보았을 때 “맞아! 항상 감독이 선수교체를 통보하는 것이 맞아. 얼마나 보기 좋은가…”라고 생각하였고 KBO 기술위원회에서도 내년부터 우리도 로이스터 감독처럼 감독이 직접 선수 교체를 비롯한 모든 것을 심판에게 통보하는 룰을 적용하자고 발의도 하였습니다.
나도 2000년대 초반에 한화 이글스 감독을 하면서 당신과 같은 운동장 매너를 선보였지만 팬들이나 언론 매체에 별로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감독이 매일 그라운드에 나가서 어필한다고 수군거리며 이야기하고 선수교체를 하는 것도 감독이 쓸데 없이 그라운드에 자주 나온다고 질타하는 사람들이 많았지요. 그 때를 회상하면 같은 야구지만 문화의 차이는 있는가 봅니다.
우리와 피부색이 다른 미국의 메이저리그에서 영입한 감독은 매일 운동장에 나와도 문제가 없었고, 도루하다 태그아웃 당한 우리 선수를 생각해 어필하려고 2루까지 뛰어 나가도 아무도 안 된다고 이야기하지 않더군요.
당신의 행동이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통용 되는 감독으로서의 의무라는 것을 이제야 인식을 하는 모양입니다. 이런 인식 자체가 당신이 한국에 와서 야구를 하면서 한국에 전파되는 미국 야구문화의 한 단면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감독을 할 때 ‘감독이 연속 경기 출장 기록을 경신한다’며 얼마나 무안을 주던지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는군요.
나는 당신이 올해 보여주었던 열정과 투지를 높게 평가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아쉬움이 없지 않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한국 야구문화에 대해서 알았으면 하는 점이 조금 있어서 이렇게 펜을 들었습니다.
당신을 보좌하는 커티스 정은 나와는 아주 각별한 사이입니다. 이 글을 쓰는 내가 당신편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있어야 내가 글을 쓰는 이유를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요즘 신문지상이나 인터넷에 이번 시리즈를 보고서 삼성이 이길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한 글들이 많습니다.
엄청난 분석과 관찰, 통찰력을 가지고 시리즈 단 3경기 만를 압축하여 삼성이 이겼던 이유를 설명한 글을 보았는데 일단 기자의 야구에 관한 안목과 노력에 대하여 치하해야겠습니다.
본인은 야구를 하면서 대학을 못나와 늘그막에 야간 대학을 마쳤고 이왕 공부한 김에 대학원까지 생돈 써가며 그까짓(?) 석사 한번 받아 보려고 무진 노력을 했습니다. 나보다 나이 적은 교수 밥 사주고 어쩌다 학교에 못가면 전화통을 붙들고 딸 같은 조교에게 사정사정하면서 드디어 대학원을 졸업했고 석사 논문 하나 받았습니다.
그 몇 페이지 안 되는 논문 쓰느라 2년을 고생하며 공부하였고 실험을 한다고 고등학생 중학생 반협박하며 간신히 만든 2년의 역작도 (나에게는)요즘 기자들 단 3경기 만에 쓴 기사보다도 못한 논문 한권 만들었는데.
기자들은 정말 글을 잘 씁니다.
단 3경기를 보고 어떻해 그런 분석과 그런 결론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존경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서론이 길었고 난 거꾸로 ‘롯데가 질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 조심스레 지적을 해보고 싶습니다.
먼저 롯데의 감독인 미스터 로이스터는 한국야구가 굳이 랭킹으로 따진다면 몇 위인 줄 아는지 궁금합니다.
IBAF(국제야구연맹)에서 발표한 2008년 한국 랭킹은(난 이런 것이 있는 줄 올해 처음 알았다) 일본, 미국, 쿠바에 이어 4위입니다.
물론 프로리그로 따지면 랭킹은 달라지겠지요.
1위는 미국, 2위는 일본, 3위는 한국, 이같은 순위가 아니라고 부정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미국 국민스포츠인 메이저리그는 명실공히 세계 1위이고 그들은 한 시즌 160경기 이상씩 치르며 야구에 관한 인프라나 모든 조건이 우리와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일본이나 한국이 세계야구대회에 나가면 좋은 성적을 거두는 지를 생각하고 이번 포스트 시즌을 치렀다면 롯데의 탈락은 글쎄, 삼성 선동렬 감독이 이번에 경기를 너무 잘해서 미스터 로이스터 감독이 이길 수 있었을 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3연패의 수모는 당하지 않았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이번 시리즈를 앞두고 누가 나에게 물어보지 않아서 말은 안하였지만 전문가들의 전력 평가는 롯데가 우세하고 경험은 삼성이 앞선다는 예상이 압도적이었습니다.
상대적인 전력이 앞선 팀이 막상 경기에서는 전패를 했다는 것은 한번은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한국 야구는 단기전에 꼭 필요한 조치는 그때그때 빠른 결정을 내린다는 점에 있습니다.
선동렬 감독은 1, 2차전을 이기고도 3차전에 타순과 선수를 바꾸어서 기용했습니다. 2번에 조동찬, 5번에 박석민, 이 선수들이 결국 승리하는데 큰 공을 세웠지요.
전날 경기를 통해서 드러난 문제점과 장점을 다음 경기에 바로 적용하는 것이 한국야구의 장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력을 극대화시킨 것이지요.
우리는 이런 말을 굉장히 중요시 합니다. ‘지피지기는 백전백승이다.’ 이 말의 뜻은 상대를 알고 자기 자신을 알면 백번을 싸워도 다 이길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한국야구의 정보 분석력을 과소평가하지는 않았는지요.
나는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때 한국의 전력분석요원이었습니다. 대만을 맡았는데 대만 선수 이름은 물론이고 그 선수의 장단점, 심지어는 감독의 습성까지도 연구 분석하였고 그들의 자료를 수집하느라 1년 동안 미국, 호주, 대만, 일본 등지를 돌아다니며 그들을 철저하게 해부 분석한 자료를 만들었지요.
한국야구는 정보 분석력에서 만큼은 미국에 뒤지질 않습니다. 대투수 동영상만 있다면 솔직히 직구, 변화구 던지는 동작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이나 일본의 단기전 승부는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한국이나 일본은 시리즈에 사활을 걸고 경기에 임하며 특히 한국은 팀의 당 해년도 순위도 바꾸어 놓습니다.
롯데는 페넌트레이스 3위지만 2008년도 팀순위는 4위로 확정됐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한국의 포스트시즌은 미국처럼 축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국의 모든 팀 순위는 시리즈 성적이 우선합니다.
미스터 로이스터는 그 점을 간과한 것 같습니다.
물론 롯데의 선수들이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다수라면 삼성이나 두산 혹은 SK까지 이기고 우승을 할 수도 있겠지만 롯데는 한국선수들이 주축이고 팬들이나 언론이나 운동장 안에 있는 심판들도 모두 한국인이며 이들은 한국야구 문화의 중심에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야구 문화에 좀 더 관심을 갖고 그들을 존중해야하며 한국야구를 과소평가해서는 페넌트 레이스에서는 우승을 할 수 있을 수 있겠지만 한국시리즈에서는 결코 우승하기가 쉽지않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습니다.
올 시즌 500경기 이상 한 경기도 빠지지 않고 봐온 나로서는 시즌 초 롯데의 작전에 많은 의문을 가진 적이 있지만 시즌 중반부터 점차 한국적으로 움직이는 여러 가지 징후 (예를 들면 3회에 보내기 번트, 이런 작전이 꼭 옳다고는 생각지 않지만)를 보고 올해 롯데의 성적을 상향 조정하며 분명히 가을에도 야구를 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을 하였습니다. 롯데는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가을 잔치에 힘 한번 못써보고 물러난 점에 대해선 선수들도 물론이지만 미스터 로이스터도 생각을 한국적으로 맞춰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당신의 절친한 친구 보비 발렌타인 감독도 2004년인가 지바롯데 마린스가 우승할 적에 일본인 감독보다 더 일본적인 야구를 구사했습니다. 그 때 보비의 작전 구사율은 일본 최고수준이었습니다.
결론은 미국에서는 미국야구, 일본에서는 일본야구, 한국에서는 한국야구를 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문화적인 차이는 분명 존재합니다. 부산 롯데 팬의 엄청난 응원과 관심을 미국에서는 본 적이 없었다고 말하였는데 부산 갈매기의 응원과 미국야구나 미식축구에서의 응원과 다른 점은 무엇인지 말해볼까요.
미국의 응원은 선수 개인이 좋아서, 혹은 자신이 좋아하는 팀을 응원하는 개인적인 성향이 짙지만 부산 갈매기들은 자신이 아니라 팀입니다. 내가 아니라 우리라는 이야기입니다.
예전에 해태 타이거즈가 있을 때 부산사람은 해태 껌 안 씹었습니다. 아무리 해태과자가 맛있어도 먹지 않았죠. 그 이유는 롯데에도 껌과 과자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롯데는 1, 2, 3차전 선발투수를 미리 예고를 하였습니다. 물론 신사적이고 올바른 결정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상대팀이 안하는데 나홀로 신사인 척하는 것은 글쎄요, 승부의 세계를 누구보다 잘 아시겠지만 이긴자 만이 관용을 베풀 수 있는 것이 승부의 세계가 아닐런지요.
KBO 규정에 시리즈 선발을 10일 전에 예고하라는 법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일찌감치 예고를 한 것은 좋은 쪽으로 생각하면 나갈 선수들이 그 3명이라는 것을 상대방도 알고 있고 팬들도 알고 있고 그 누구도 알 수 있는 아주 쉬운 문제였지만, 내 패를 먼저 보여주고 틈을 보였다는 것은 상대가 3명의 투수들 순서대로 마인드 컨트롤하면서 준비 할 수 있었다는 불리함은 생각을 못하셨나요.
한국야구와 일본야구의 장점인 정보분석력을 인정하지 않았는지 혹은 과소평가하였는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준플레이오프 동안 두산이나 SK구단은 전력분석요원을 팀당 5명 이상씩 보내서 상대팀 선수들의 컨디션이나 감독의 작전, 투수의 로테이션 등을 철저하게 분석하였습니다.
1차전에 송승준의 투구수가 늘어나고 통타를 당한 것이나 2차전에 손민한의 체인지업에 삼성선수들의 대처 능력을 어떻게 보셨는지요. 페넌트레이스 기간에 그 두 선수의 공을 삼성 선수들이 얼마나 쳐냈는지.
3차전에 국민유격수 박진만의 고의사구를 보면서 무엇을 생각하였는가. 박진만은 올 시즌 후 FA 선수입니다. 고액 연봉자인 그런 선수가 팀이 이길 수만 있다면 내 몸을 다쳐 설사 야구를 못한다 할지라도 145㎞의 투구에 팔꿈치를 밀어 넣겠는가.
미국에는 그런 선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한국이나 일본 선수들은 박진만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는 선수라도 박진만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선수들이 금메달을 따고 모두들 울면서 인터뷰한 내용을 들었는지요. 일년에 600만 달러를 받는 이승엽이 눈물은 글썽이며 “후배들이 병역면제를 받게 돼서 너무너무 기쁘다”라고 말했습니다.
한국의 선수들은 나보다는 우리를 강조하는 점이 미국하고는 좀 다른 면이 있습니다.
내가 이처럼 긴 예를 들면서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롯데가 진 이유를 설명하는 것은 미스터 로이스터가 못마땅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년에 또는 그 이후에도 꾸준히 롯데야구가 정상의 팀이 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심정에서 하는 말입니다.
‘롯데가 잘하면 한국야구가 산다.’ 올해 이 속설이 증명 되었습니다.
관중 500만 명 돌파는 한국야구가 앞으로 더 발전할 초석을 만드는데 롯데의 역할이 가장 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중심에 미스터 로이스터가 있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롯데가 강하다고 했는데 롯데는 졌습니다.
“한국야구는 단기전에 강하다.”
“한국야구는 시리즈에 목숨을 걸 줄 안다.”
“한국야구는 페넌트레이스 승부보다는 시리즈 승부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이 말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십시오. 미스터 로이스터, 당신은 올해 한국야구를 위해서 남긴 긍정적인 면이 훨씬 많았습니다. 나 역시 당신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다만 최고의 팬들인 부산 갈매기들이 있는 롯데 자이언츠가 내년에 꼭 성공 할 수 있도록 당신의 임무가 너무도 크기에 한국야구를 더 이해하시기를 부탁드리는 겁니다.
다소 건방진 표현이 있었다면 너그럽게 용서하시고 부디 당신이 한국 프로야구 무대에서 성공하기를 기원하겠습니다.
2008년 10월 13일. 유승안 KBO 경기운영위원(전 한화 이글스 감독)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