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의 공식기록원으로 일한 지 올해로 38년.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긴 시간인데, 강산이 네 번이나 변할 수 있을 만큼의 장구한 세월을 오로지 공식기록원 한 길만을 바라보며 묵묵하게 걸어온 히가시주르 코지(東水流 幸二, 58) 기록부장을 만났다. 1971년 처음 공식기록원으로 데뷔한 이후, 그가 올해까지 출장한 경기수는 메인 기록원만 따져 1300여 경기. 센트럴리그 개인통산 9번째로 많은 출장 경기수를 기록하고 있는 현역 베테랑 기록원이기도 하다. 외형적인 체구는 다소 왜소한 편이지만 필자의 물음에 그가 던지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지금까지 다져온 기록에 대한 깊은 애정과 철학이 옹골지게 담겨 있었다. 그런 이유로 질문의 방향도 기록에 대한 사실적 이야기에 머물기 보다 야구기록에 관한 정신적인 부분까지도 짚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자연스레 일었다. 굳이 비교해, 전편에 다루었던 아라이 퍼시픽리그 기록부장에게서 일에 대한 확고한 자신감과 추진력이라는 외형적 힘을 느꼈다고 한다면, 이번 히가시주르 센트럴리그 기록부장에게선 오랜 경험과 연륜에서 묻어 나오는 정신적인 내면의 힘과 깊이를 엿볼 수 있었다. Q:먼저 센트럴리그 기록부의 구성과 현황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A:공식기록원은 모두 12명입니다. 연령대는 퍼시픽리그와 마찬가지로 20대에서 60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리그 최고령자는 1500경기가 넘는 출장 경기수를 갖고 있는 61세의 ‘이시이(石井)’ 기록원입니다. Q:퍼시픽리그의 기록부장은 경기에 출장하지 않는 것으로 들었습니다. 센트럴리그도 같습니까? A:그렇지 않습니다. 센트럴리그에서는 기록부장 역시 공식 경기에 나가 직접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Q:학교 졸업 후 바로 공식기록원으로 활동하셨는지요? A:아닙니다. 국립전문학교를 졸업한 후에 민간기업에 취직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공식기록원 채용관련 신문공고를 보고 응시, 기록원이 되었습니다. Q:까마득한 일이 되겠지만 그 옛날의 기록원 생활은 어떠했는지요? A:처음 기록원이 되었을 때는 기뻤습니다. 하지만 1군에서 메인 기록원으로 데뷔하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당시 선배님이 46세 정도였는데 그 분이 거의 은퇴하실 때까지 제게는 메인 기록원으로서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한 8, 9년 정도 걸렸다고 생각됩니다. 그 때 선배님에게 내게는 왜 기회를 주지 않는 지에 대해서 물어보거나 따졌다면 좀더 기회가 일찍 돌아왔을지도 몰랐을텐데…. 그 때는 그럴 용기가 없었습니다. Q:기억에 남는 경기를 떠올린다면? A:오랜 세월 동안 공식기록원으로 일해왔지만 노히트노런이나 퍼펙트 경기를 아직 한번도 기록해보지 못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경기는 아마도 프로 데뷔전(2군)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첫 데뷔 전을 치르게 되었는데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묘하게도 1번과 2번 타자의 타구에서 수비실책이 연속으로 나와 ‘에러(Error)’ 판정을 잇달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조짐이 이상한걸 보니 내 인생 자체가 이러다 에러인생이 되는 것은 아닐까?’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지요. Q:저는 기록강습회를 통해 ‘야구를 정말 사랑한다면 오히려 기록원이 되지 말라’라고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기록원이 되기 전과 비교해 야구를 보는 눈이나 감정의 변화를 말씀해 주십시오. A: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야구팬이었을 때는 야구가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직업으로서의 야구는 책임이 따르는 만큼 마음이 무겁고 순간순간이 매우 어렵습니다. 미스(실수)에 대한 부담이 늘 따라다니기 때문입니다. Q:경험으로 미루어 공식기록원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나 자세 또는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신다면? A:기록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은 뭐니뭐니해도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머리가 좋거나 이론에 밝다고 해도 경험이 많은 사람을 따라 갈 수는 없습니다. 한편 기록원이 되고 난 뒤 2, 3년정도 흐르면 하나의 위기가 다가 옵니다. 판정에 대한 자신감이 줄어들지요. 경험이 조금씩 쌓이면서 자신감이 생길만한 시점인데 오히려 타구가 나왔을 때 판단이 잘 서지 않는 경우가 자주 발생합니다. 이것 역시 경험으로 극복하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Q:매년 발간하고 있는 기록집을 뒤져보니 역대 리그 최다출장 기록원의 경기수가 3585경기로 나와 있습니다. 기록부장님은 40년에 가까운 경력임에도 1300경기 정도인데 그 이유는? A:과거 초창기에는 혼자서 도맡아 일을 하다 보니 아마도 출장경기수가 많아졌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젊었을 때 일을 시작했다 하더라도 은퇴할 때까지 공식기록원으로서 2000경기 이상 출장할 가능성은 상당히 낮습니다. 심판과 달리 한 경기에 메인 기록원 한 명에 한 해 출장기록을 인정하고 있는 리그의 기준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는 메인 기록원과 전산 입력을 담당하고 있는 기록원의 출장 경기를 모두 정식 출장 경기수로 인정해주고 있다) Q:기록원 출장 경기수 집계에 페넌트 레이스 경기수만 포함됩니까? A:아닙니다. 페넌트 레이스 경기 외에도 올스타전이나 일본시리즈를 비롯한 포스트 시즌 경기에 출장한 것도 정식 경기수에 포함됩니다. Q:한국에서는 인터넷 환경의 급속한 발달로 인해 심판원이나 공식기록원의 판정미스는 팬들의 즉각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킵니다. 일본에서도 기록원의 판정실수가 기사화되거나 사회적 이슈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까? A:정신적으로 많이 힘들겠습니다. 일본은 한국보다는 인터넷 환경이 보편화되어 있지 않아서 그런 일은 아직 없습니다. 또한 기록원의 판정미스가 신문에서 별도로 기사화되는 경우도 거의 없습니다. 어쩌다 기사화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경기가 끝나고 감독이나 선수를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기록미스에 관한 얘기가 흘러나올 때 뿐입니다. Q:일본프로야구의 역사가 70년이 넘습니다. 과거의 공식기록에 대한 오류가 발견된 적은 있는지? A: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전쟁을 겪고 난 뒤 다시 열리게 된 프로야구에서 통산 1000호 홈런을 기록한 선수가 바뀐 적이 있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리그가 중단되었던 것이 정확한 기록에 걸림돌이 되었던 거지요. 당시 양 리그에서 재조사를 벌인 결과, 이미 이전에 1000호 홈런이 달성된 것으로 확인된 적이 있습니다. 개인기록과 관련해서는 ‘가와카미(요미우리)’라는 선수의 개인통산 안타수가 통계 오류로 조정된 예가 있습니다. Q:한국에서는 기록 전산화를 위해 1만 경기에 가까운 역대 과거경기를 수년간 공식기록원들이 일일이 수작업으로 입력을 하는 고단한 과정을 거쳤습니다. 일본에서는 과거기록에 대한 데이터베이스화를 어떻게 구축하고 있는지요? A:대단한 일이었겠습니다. 일본프로야구는 1989년에 도쿄 돔구장이 생기면서 처음으로 경기 중에 일어나는 기록을 전산화로 처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역사가 긴 만큼 과거 기록을 거슬러 올라가 한국처럼 정리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습니다. 즉 전 경기를 전산화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선수 개인별 위주로 정리하는 작업은 현재도 진행 중에 있습니다. 우선은 굵직한 기록을 남겼던 선수를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한편 과거의 룰과 현재의 룰이 달라진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과거의 룰에 따랐던 통계를 그대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출루율의 공식이 바뀌었다고 해서 현재의 출루율 공식을 과거의 선수기록에 대입하지 않습니다. 당시 공식룰에 의한 결과를 그대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Q:경기 중에 야구규칙과 관련한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 한국에서는 기록원이 직접 장내방송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는 어떠합니까? A:일본에서는 룰적으로 사고가 발생하면 심판원이 전담합니다. 마이크를 들고 방송하는 노릇도 심판원이 직접 합니다. 공식기록원이 분쟁에 관여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일본에서 기록원이 방송을 하는 경우는 경기 개시시간과 종료시간, 투수의 투구수 등, 기록과 관련된 정보 전달 정도다) Q:아라이 퍼시픽리그 기록부장에게도 질문을 드렸습니다만, 역시 마찬가지로 기록판정과 관련한 기술적인 질문을 몇 가지 드리겠습니다. 올해 일본에서 새로 발행한 기록규칙집에 기록원의 타구 판정과 관련해서 ‘보통수비위 범위’에 대해 부연설명을 달아놓았는데 따로 이유가 있습니까? A: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야수가 처리하기 쉬운 타구와 어려운 타구를 구분 짓는 기준을 상황에 맞게 판단하자는 취지입니다. 새로이 문구가 추가되었다고 해서 별다른 의미가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부연 설명하자면 같은 성질의 타구라고 하더라도 야수가 서 있는 위치와 거리에 따라 강습성 타구로 볼 수 있는 경우가 있는데, 수비수의 이런 처지를 고려해서 판단하자는 내용이다) Q:일본에서 발행한 ‘블루북’(퍼시픽리그 기록집)을 보니 한 명의 투수에게 승리투수와 세이브 기록을 모두 준 사례가 있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은 걸로 알고 있는데? A:1974년 다카하시(니혼 햄)라는 투수가 한 경기에서 승리투수와 세이브를 모두 기록한 경우가 있습니다. 다카하시는 당시 2-0으로 리드하던 6회 2사 후, 다음 투수에게 마운드를 넘기고 3루수로 이동했다가, 후임투수가 볼넷을 허용하자마자 다시 마운드에 올라 끝까지 리드를 지켜냈습니다. 하지만 곧바로 문제점이 있다는 판단이 들어 1975년에 동일투수에게는 승리투수와 세이브 기록을 함께 기록하지 않도록 규칙을 개정한 바 있습니다. Q:홈런 비거리에 대한 질문입니다. 한국에서는 공식기록원이 5m단위로 끊어서 홈런 비거리를 판단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는? A:일본에서는 공식기록원이 홈런 비거리를 판단하지 않습니다. 방송실이나 본부실에서 따로 비거리를 유추해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공식기록원은 그에 따릅니다. Q:한국의 공식기록원들 사이에서 하나로 의견이 통일되지 않았던 사안이 하나 있습니다. 일명 ‘끝내기 땅볼’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만. 예를 들면 9회말 0-0 동점 상황이라고 가정하겠습니다. 무사 주자 3루에서 타자의 타구가 유격수 땅볼이 되었습니다. 유격수가 이 타구를 잡아 홈으로 달려드는 3루주자를 아웃시키기 위해 정확히 송구했지만 세이프가 되어 경기가 끝난 경우, 타자의 기록을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요? A:일본에서는 그런 경우에 타자에게 안타로 기록합니다. 홈을 1루라고 생각해서 정확히 송구했음에도 아웃이 되지 않았다면 안타로 간주합니다. (한국에서는 한때 야수선택으로 기록해왔지만, 경기 상황이 야수선택이 될 수 없는 끝내기 상황이라는 것을 고려해 끝내기 땅볼로 기록을 하고 있다. 일본처럼 끝내기 안타로 기록되기 위해선 타구 자체가 안타성 타구의 성질을 갖고 있어야 한다) Q:(이야기 도중, 무사 1루 상황에서 2루수 앞 땅볼이 나왔다.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 하나가 있어 물었다) 투수의 자책점과 관련해 주자에 대한 아웃기회를 어느 쪽에 주고 있는 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방금 보신 상황에서 2루수가 ‘알을 깠다면(다리 사이로 타구를 빠뜨린 것을 말함)’ 주자에 대한 아웃기회를 일본에서는 타자주자 또는 1루주자 중에서 어느 쪽으로 주고 있습니까? A:전에는 판단을 하지 않고 있다가 나중에 실책으로 아웃 되지 않은 2루주자가 득점을 하고 난 이후에 에러를 어느 쪽에 줄 것인지를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에러가 일어난 직후 바로 결정을 합니다. 방금 일어난 상황이라면 2루쪽에 아웃기회를 적용합니다. 제대로 플레이가 일어났다면 2루에서 1루주자가 당연 아웃되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단 치고 달리기 작전 등으로 인해서 1루주자가 2루에서 아웃 되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으면 아웃기회를 타자주자에게 적용합니다. Q:규칙에 의해 타자의 홈런이 취소된 사례가 보입니다. 설명을 부탁 드립니다. A:1984년 미노다(한큐) 선수가 1-1 동점상황이던 7회 초에 홈런을 기록해 팀이 리드하게 되었는데, 계속된 공격 무사 1루에서 강우로 콜드게임이 선언되는 바람에 홈런이 취소된 사건입니다. 이는 ‘콜드게임은 균등회로 종료한다’라는 4.11 (d)항의 [주]에 명시된 규칙이 적용된 사례입니다. Q:콜드게임의 ‘최종균등회’ 종료기준은 한국의 프로 2군과 아마야구에서도 적용하고 있는 규칙입니다. 그러나 한국프로야구 1군에서는 현재 적용하지 않고 있는 규칙입니다. 룰에 의해 홈런이 취소된 것은 결국 서스펜디드 게임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프로야구의 규칙 때문에 생겨나게 된 기록이군요? A:한국은 좀 다르군요. (기록부장은 대화도중 기록이 인정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일일이 이닝스코어를 만들어 설명해 주었다) ※부연설명 우천 등으로 콜드게임이 나왔을 때, 최종균등회 처리기준에 따라 팀이나 개인기록이 일부 무효가 되는 것은 서스펜디드(일시정지) 경기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된다. 서스펜디드 경기는 정식경기 성립 이후에 1)원정 팀이 어느 이닝의 초 공격에서 지고 있던 경기를 동점으로 만들거나, 2)원정 팀이 동점상황에서 다시 앞서나가는 점수를 올렸을 때 나타날 수 있다. 위의 두 가지 상황이 벌어진 다음, 홈팀이 말 공격에서 다시 리드하는 점수를 뽑지 못하거나, 역전 당한 경기를 최소한 동점상황으로 아직 되돌려놓지 못한 상태에서 비가 내려 공격 중간에 경기가 중단되었을 때에는 서스펜디드 경기가 선언되게 된다. 이는 홈팀에 주어진 경기 흐름상의 어드밴티지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일본처럼 서스펜디드 경기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원정 팀이 어느 이닝의 초 공격에서 얻은 동점 점수, 또는 재 리드를 잡아낸 점수 이후의 모든 기록은 없던 일이 되며 기록은 자연스레 무효처리가 된다. 한국프로야구에서는 일본과 달리 서스펜디드 경기제도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그 어떠한 상황에서 콜드게임이 일어났더라도 개인이나 팀 기록이 무효가 되는 일은 절대 없다. Q:내년부터 양 리그 기록부가 통합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에 대한 준비를 따로 하고 있는지요? A:현재 규정 등에서 사소한 부분에 차이가 있긴 합니다만 가급적 하나로 통일시키는 방향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통합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하나로 된 통합규정이 마련될 것으로 믿습니다. Q:끝으로 한·일간의 기록규칙 중 가장 극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자책점 규정에 관해서는 어떠한 생각을 갖고 계신지요? A:지금의 일본식 자책점 규정은 아주 오래 전부터 정해져 내려온 것입니다. 당시에 가장 합리적이라고 판단해 정착시킨 것으로 분명한 존재이유를 갖고 있습니다. 미국식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라 생각되긴 하지만 두 가지 방식 모두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2008 아시아 시리즈 공식기록원 배정을 위한 룰 미팅 자리를 비롯, 4일간에 걸친 연속된 만남에서 히가시주르 기록부장의 표정은 언제나 ‘진지함’ 한가지였다. 한국식 표현을 빌자면 ‘이순(耳順)’이 얼마 남지 않은 나이임에도 경기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마치 무엇을 잡아내기라도 하려는 듯, 젊은이 못지 않은 집중력과 날카로움을 시종 유지하고 있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그의 입을 통해 많은 이야기를 전해 들었지만, 정작 마음에 두고 남을 것은 그의 눈빛이었다. 윤병웅 KBO 기록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