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각 구단의 장내 아나운서와 전광판 조작을 담당하는 오퍼레이터를 대상으로 일에 임하는 자세와 마음가짐, 그리고 현장업무에 필요한 야구지식과 간단한 기록규칙을 설명하는 자리를 처음으로 마련한 적이 있었다. 이전에는 한번도 가진 바 없었던 모임을 생각하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원활한 경기진행에 있어 아나운서를 비롯한 숙련된 현장요원들의 도움이 필수적임에도 담당자들의 잦은 교체로 인해, 일에 대한 연속성을 기할 수 없었던 부분을 보완하고자 했던 것이 가장 주된 목적이었다. 구단의 고용형태에 따라 약간씩의 차이는 있겠지만, 현재 장내방송과 전광판 운영을 담당하는 요원들의 신분은 크게 구단소속의 정식직원과 아르바이트 형식의 촉탁으로 나뉘어져 있다. 요즘 정규직과 비 정규직이라는 이원화된 고용형태가 사회적으로 커다란 이슈가 되고 있는데, 굳이 비유하자면 직원은 정규직, 아르바이트는 비 정규직 쯤으로 가름할 수 있다고 하겠다. 이런 고용상의 차이 때문인지 직원이 경기장 내의 현장업무를 맡고 있는 구단은 그래도 사람의 이동이나 교체가 좀 덜한 편에 속하지만, 아르바이트나 촉탁 형태로 고용관계가 이루어진 구단은 그 변동폭이 상대적으로 매우 큰 편이다. 업무에 있어 사람이 바뀐다는 것은 일에 대한 연속성이 끊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존에 있던 사람으로부터 ‘인수’라는 과정을 대개는 거치지만, 야구 경기가 벌어지는 현장은 책상 앞에서 하는 일과는 그 성질이 다르다. 경기 흐름도 밖에서 보던 것보다는 훨씬 빠르고, 생각하지 못했던 돌발상황도 자주 일어난다. 한마디로 순발력이 요구되는 자리다. 일에 대한 형식이나 규범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긴 하지만, 상황에 따라 그 형식이나 규범의 틀을 깨야 하는 일은 비일비재다. 이러한 것들은 인수인계의 형식만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 문제다. 또한 장내 아나운서 직을 100% 여성들이 독차지(?)하고 있는 국내 여건에서 결혼이라는 변수 역시 무시할 수 없는 걸림돌이 된다. 일반적인 경우, 결혼과 함께 직장까지 그만두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모 구단의 장내 아나운서(전광판 조작을 겸직)가 결혼으로 일을 그만두게 되는 바람에 업무에 대한 인수인계과정 없이 새로운 얼굴이 그 자리에 덜컥 앉게 된 일이 있었다. 일에 대한 사전지식이 거의 전무하다 보니 기록원들과의 호흡은 아예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상황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 “스트라이크하고 볼이 뭐예요?” 전광판의 표시램프를 통해 볼카운트를 표출하려면 스트라이크나 볼을 선택하는 작업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신임 전광판 오퍼레이터의 입에서 불쑥 날아온 질문이었다. 이쯤 되면 그야말로 ㄱ,ㄴ부터 새로 시작해야 한다. 상황판단은 먼 나라 얘기다. 마치 야구장에 처음 데려간 어린 자녀에게 아빠가 소상히 알려주듯이, 야구를 보는 법부터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그것도 촌각을 다투는 경기장에서 신경적으로 날이 선 기록원이 직접. 이것은 아주 극단적인 예가 되겠지만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명색이 프로야구인데, 이러한 일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유감이지만 방송과 전광판 조작을 통해 경기를 이끌어가는 아나운서나 오퍼레이터 등의 현장요원들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랫동안 그 일을 해오던 사람이 갖고 있던 노하우와 일에 대한 전문성을 가벼이 여기는 인식 말이다. 사람이 바뀐다 해도 대략 며칠 정도만 지나면 누구나 그 일을 무난하게 해낼 수 있겠지 하는 생각. 그래서 10년 이상의 경력을 갖고 있는 베테랑 현장요원이 당장 그만둔다 해도 큰 일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장에서 같이 호흡을 맞추며 일을 해본 기록원들은 생각이 다르다. 다년간 현장에서 산전수전을 겪어낸 아나운서와 현장요원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피부로 느낀다. 단순히 일을 하는 과정에서 기록원이 좀더 편할 것이라는 시각으로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야구장을 찾는 팬들에게 보다 나은 즐거움을 주기 위해 구단은 다방면에 걸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매표의 편리성에서부터 시작해 경기장의 편의시설 확충과 양질의 그라운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연구 그리고 좀더 즐겁고 새로운 응원문화에 대한 공부까지. 그러면서도 정작 매끄러운 경기흐름을 책임지고 있는 아나운서나 오퍼레이터들의 구실에 대한 생각은 소원하다. 진정한 팬 서비스의 시작은 경기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부분부터 출발되어야 한다.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이 만들어내는 명승부, 심판원과 기록원의 공명정대한 판정 여기에 물 흐르는 듯한 매끄러운 경기진행까지. 이 삼박자가 하나로 어우러져야 한다. 그러나 아직은 박자 하나가 부족한 느낌이다. 장내 아나운서와 전광판 조작요원들의 경험부족으로 인한 서툰 조작과 잔 실수는 경기의 질을 떨어뜨리게 만드는 요소다. 1951년부터 2007년까지 무려 56년간이나 연속으로 뉴욕 양키스의 홈경기 장내 아나운서를 도맡아왔던, 지금은 할아버지가 된 한 분이 있다. 밥 셰퍼드(Bob Sheppard. 98)다. 그는 뉴욕 양키스의 선수와 팬들로부터 ‘신의 목소리’라는 찬사를 들으며 양키스의 팬들에게 대를 이어 또 하나의 전설이 된 사람이다. 시간적으로 먼 훗날이라야 가능한 일이 되겠지만, 우리나라 프로야구에서도 ‘밥 셰퍼드’와 같은 전설적인 아나운서의 탄생을 현실로 만나볼 수 있게 되기를 감히 꿈꿔본다. 윤병웅 KBO 기록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