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팀 삼성에 3점차(6-3)로 뒤지고 있던 두산에 9회초 마지막 공격에서 전세를 뒤집을 수도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 들었다. 2사 만루, 타석에는 3타수 2안타를 기록하며 이날만큼은 누구보다도 좋은 타격감을 보여주고 있던 임재철이 들어서고 있었다. 그러나 임재철은 초구 스트라이크를 그대로 흘려 보냈고 2구째에 배트를 내밀었지만 파울볼, 얼떨결에 볼카운트는 타자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는 2-0으로 돌변하고 말았다. 이제 스트라이크 하나면 경기가 끝나는 상황. 그 순간, 삼성의 선동렬 감독은 그런대로 잘 던지고 있던 좌완투수 권혁을 과감히 내리고 팀의 전문 마무리 오승환을 마운드에 올리는 깜짝(?) 투수교체를 단행했다. 들리는 후문으로는 2사 후여서 주자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잇점을 안고 던질 수 있다는 점(세트 포지션이 아닌 와인드업 포지션으로의 투구가 가능하다는 것을 말함)과 위치상 우타자에 우투수로 대응할 수 있다는 점, 여기에 비교적 부담 없이 적은 투구수로 세이브를 따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오승환을 투입한 것이라고 하지만, 반대로 타자의 처지에서 보자면 부담 백배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선동렬 감독의 이러한 노림수는 그대로 적중했고, 임재철은 오승환이 던진 공 하나(세이브 추가)에 맥없는 헛방망이질 한번으로 공격을 허무하게 접어야 했다. 이는 지난 7월 15일 대구구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런데 이날 상황 말고도 선동렬 감독은 볼카운트 진행 도중에 투수를 교체하는 장면을 우리에게 심심찮게 보여주고 있는 편이다. 일반적인 감독들의 투수교체 타이밍과는 달리 묘한 시점에서 교체 카드를 꺼내 드는 선동렬 감독의 마운드 운용을 바라보며 그럴 때마다 자연스레 고개를 드는 의구심 하나가 있었으니, 바로 성공률이었다. 올 시즌 선동렬 감독이 볼카운트 도중에 투수를 바꾼 경우는 모두 8번이다. 이 중에서 투수의 부상으로 볼카운트 0-2에서 오승환을 배영수로 바꾼 7월 16일(두산에 11-12로 재역전패)의 경우를 제외하면 7번. 6월 5일 광주 KIA전서 1사 2, 3루의 위기에 몰리자 최희섭을 상대로 볼카운트 0-1에서 투수를 교체(안지만에서 배영수로), 최희섭을 고의4구로 거른 일 또한 번외로 치자면 모두 6번이다. 그런데 볼카운트 중간에 투수를 바꾼 것이 결과적으로 모두 성공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처음 궁금했던 성공률은 100%였다. 일지를 간단하게 나열하자면 이렇다. 4월 16일 대구구장. 동점상황에서 맞이한 8회 1사 1루의 위기에서 삼성은 한화 김태완 타석에서 투수 안지만을 권혁으로 교체했다. 볼카운트 0-1이었고 결과는 중견수 뜬공. 5월 6일 대전구장. 3-4로 뒤지던 7회 2사 만루의 다급한 상황. 타석에는 이번에도 김태완(한화)이었다. 볼카운트 2-2에서 삼성은 정현욱을 내리고 최원제를 올렸다. 결과는 2루수 뜬공. (이날 최원제는 공 1개로 승리투수에 이름을 올렸다) 5월 23일 대구구장. 롯데에 2점차로 뒤지던 삼성은 5회 2사 2, 3루, 가르시아 타석에서 윤성환을 좌완 차우찬으로 바꿨다. 볼카운트 0-1이었고 가르시아는 삼진으로 물러났다. 6월 10일 문학구장. 경기시작 하자마자 2점을 내주고 계속된 2사 1, 2루의 위기. 1회말 SK 최정 타석에서 삼성은 난조를 보이고 있던 선발 윤성환을 내리고 김상수를 투입했다. 볼카운트 0-1상황이었고 최정은 삼진. 7월 8일 이번에는 마산구장. 롯데에 1점 앞서가던 6회말 1사 1루 이대호 타석에서 삼성은 좌완 차우찬을 강판시키고 정현욱을 올렸다. 그 때의 볼카운트가 2-1. 이대호는 최악의 6-4-3의 병살타를 치고 말았다. 여기에 처음 서두에 꺼냈던 7월 15일의 오승환 건을 합치면 모두 6번이 된다. 앞 투수의 난조를 지켜보다 못해 바꾼 경우도 있고 구위가 불안해 보여 바꾼 경우도 있다. 투수의 투구유형상 유리한 점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상대 타자 유형에 따라 좌완을 우완으로, 우완을 좌완으로 바꾼 경우도 보인다. 그 때마다 순간의 선택은 적중했고, 선발이 무너졌던 6월 10일을 제외한 나머지 경기(5경기)에서 삼성은 모두 승리를 가져갔다. 이쯤 되면 족집게가 따로 없다. 때론 데이터를 따르기도 했을 것이고, 때론 투수들의 사소한 동작이나 구질변화를 감지해 마운드를 운용한 경우도 있었겠지만, 상당부분 선동렬 감독의 감각적인 직관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과거 해태시절, ‘무등산 폭격기’로 불렸던 선동렬 투수가 불 펜에서 몸만 풀어도 상대팀 타자들이 선동렬이 등판하기 전에 경기흐름을 돌려놔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허둥지둥하던 때가 있었다. 마치 의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아낸다’는 격이었다. 그런데 지금, 선동렬 감독은 마운드에서가 아니라 덕 아웃에서 또 한번 동물적인 감각의 절묘한 투수교체 타이밍을 이용해 타자들을 윽박지르고 있다. 7월 15일 임재철이 볼카운트 2-0라는 막다른 골목에서 갑자기 나타난 시속 150km를 웃도는 ‘돌직구’ 오승환을 상대해야 했던 심정을 헤아리다 보니, 해태시절 선동렬을 상대했던 수많은 타자들의 심정이 문득 그러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하는 말이다. 윤병웅 KBO 기록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