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 역사상 21번째의 퍼펙트 경기가 심판원의 오심으로 물거품이 되었다는 뉴스는 그 동안 접했던 해외 야구경기를 둘러싼 그 어떤 뉴스보다도 귀와 눈이 끌리는 소식이었다.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내용을 들여다보니 그 속 쓰림은 몇 배로 불어났다. 경기 중반도 아닌, 9회초 투 아웃 이후에 터져 나온 오심의 시기도 시기지만, 오심이 벌어진 상황이 판정을 내리기가 대단히 어려울 만한 장면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남의 나라 이야기인데도 우리들 일인 양,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지난 3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와 추신수가 속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경기(코메리카파크)에서 디트로이트 선발인 아만도 갈라라가는 9회초 2사까지 상대 타선을 완벽히 틀어막으며 대망의 퍼펙트 경기 수립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이제 단 한 개의 아웃카운트만 잡아내면 되는 상황. 마지막 타자이기를 희망한 제이슨 도널드의 땅볼 타구가 1루수 쪽으로 구르자 구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은 퍼펙트 경기의 완성을 확신한 듯 환호성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1루를 떠나 공을 잡은 1루수의 송구는 베이스 커버를 들어온 투수 갈라라가에게 정확하게 전달되었고, 이를 잡은 갈라라가의 발이 타자주자의 발보다 반 박자 빠르게 1루를 찍었다고 모두가 생각한 순간, 1루심 짐 조이스의 양 팔은 위가 아닌 옆을 향하고 있었다.
“세이프!”입을 다물지 못할 만큼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콜이었다.
명백한 아웃인 줄 알았다가 정작 1루심이 세이프를 선언하자 타자주자인 도널드도 양 팔로 머리를 감쌌을 만큼 도저히 믿기지 않는 장면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당연히 디트로이트 짐 릴랜드 감독의 강한 어필이 따랐고, 이어 1루심 짐 조이스가 다른 심판원과 잠시 얘기를 나누는 과정이 있었지만 끝내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다음날 이 사건은 이례적으로 미국의 백악관까지 나서서 논평을 낼 만큼 큰 파장을 일으켰고, 언론들은 1루심의 판정에 대해‘짐 조이스는 갈라라가가 새 역사를 쓰는 것을 전혀 원치 않았던 것 같다(뉴욕 타임스)’, ‘오래도록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사건이다(AP통신)’라는 등등의 비난 섞인 혹평들을 우수수 쏟아냈다.
경기가 끝나고 난 뒤 리플레이 화면을 통해 이 장면을 눈으로 확인한 1루심 짐 조이스는 오심이었음을 인정하고, 다음날 기자회견까지 열어 피해 당사자인 갈라라가와 팬들에게 사과의 말을 남겼지만, 이미 내려진 판정,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잘못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시기마저 놓치고 만 상황에서의 때늦은 참회(?)는 이미 엎질러진 물과 다름없었다.
그러면 MLB 커미셔너 버드 셀릭이 백악관의 판정번복 권유(?)에도 끝까지 만인이 인정하는 오심을 고수한 이유는 어디에 있었을까?
이는 야구의 기본 정신만큼은 훼손할 수 없다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간단히 생각해 판정을 뒤집어 갈라라가의 퍼펙트 경기를 인정해주기만 하면 꼬일 대로 꼬인 문제가 한번에 쉽사리 풀릴 것 같지만, 그 후폭풍은 생각만큼 단순치가 않다.
판정번복은 야구경기를 지탱시켜주는 근간자체를 한꺼번에 무너뜨릴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전례는 하나의 사례가 되고, 사례는 기준으로 바뀌어 조금이라도 억울하다 싶으면 과거사를 꼬투리 삼아 너도나도 판정번복을 요구하게 된다.
지엽적인 문제도 있다. 만일 판정번복을 해서 퍼펙트 경기가 달성된 것으로 간주한다면 쑥쓰러운 내야안타로 출루한 도널드의 기록수정도 수정이지만 사실상 28번째 아웃으로 처리된 이날 경기 마지막 타자의 땅볼기록은 또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과거에는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생각아래 한번 내려진 판정은 아무리 잘못 되었다 해도 번복되거나 수정되는 일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미디어의 발달과 인터넷 보급이라는 문명의 힘은 이러한 오심에 대한 야구인들의 보수적인 사고를 더 이상 고집할 수 없게 만들었다.
현장의 오심으로 끝나지 않고 시간적 제약 없이 화면으로 두고두고 재생산 되는, 이해를 구하기 힘든 오심 장면의 반복은 역사는 똑바로 기록되어야 한다는 정의론에 힘을 몰아주는 결과로 귀결되었다.
현재는 비록 홈런타구에 한해 실시하기로 제한을 두고 있지만, 야구에서는 씨도 안 먹힐 것 같던 비디오 판독이 결국 도입 시행된 이유와 배경도 따지고 보면 여기에 있다.
승부를 결정짓는 요인인 점수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홈런에 대한 오판이 경기의 승패를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몰고 갈 수 있는 위험성이 현실로 나타나자, 이것만큼은 사람의 힘(심판원)보다는 기계의 힘을 빌어 정확한 판단을 내려야겠다는 당위성이 알맹이 없는 명분을 누른 것이다.
물론 판정의 정확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야구는 사람이 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기계적인 힘을 빌어서까지 판정에 대한 정확성을 기하고자 하는 모양새가 지금도 그리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번 퍼펙트 경기의 오심 사건은 비디오 판독의 필요성은 물론, 확대적용에 대한 조심스런 접근까지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사고의 전환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한 빌미를 제공했다고 보여진다.
피해를 입은 선수 당사자에게도, 판정을 내려야 하는 심판원이나 기록원 모두에게도 대기록과 관련 되어진 오심은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게 된다. 오심은 훗날 돌아볼 수는 있어도 돌이킬 수는 없다고 했다.
대기록이 걸린 경우에 한해 오심을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제도적으로 만들어준다면 역사를 바로 쓸 수 있는 것은 물론, 그 오심으로 인해 평생 고통 받으며 살아야 할 사람들을 구원하는 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퍼펙트 경기의 완성을 결정짓는 심판원의 판정은 물론 노히트 노런이나 연속경기 안타 등의 대기록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공식기록원의 판정에 있어 잘못된 판정이 나와 대기록을 그르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다라는 걱정을 평소 해오곤 했지만 막상 현실로 접하고 나니 그 충격파가 상상 이상이다.
이번 퍼펙트 경기 오심의 최대 피해자는 투수 갈라라가다. 일생에 한번 찾아올까 말까 한 기회를 타인의 오심으로 날려버렸다. 그러나 오심의 주인공인 22년 경력의 짐 조이스 또한 갈라라가 못지 않은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일부 언론의 비아냥이 있긴 했지만, 고의로 내린 오심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이번 오심으로 짐 조이스는 평생 무거운 멍에를 등에 짊어지고 살게 되었다. 언제 심판생활을 그만둔다 한들 내려놓지 못할 멍에다.
그라운드에서 감독의 어필에 맞서 큰 소리로 맞상대하기도 하고 때론 상대를 퇴장시키는 강수를 둘 때도 있지만 인간적으로 심판은 결코 강한 사람들이 아니다. 뒤로는 사소한 오심에도 괴로워하고 오심의 사안이 크기라도 한 경우에는 죄책감으로 몇 날 몇 일을 두고 힘들어한다. 다만 힘들다고 눈을 피해 쉬어갈 수 있는 직업이 아니기 때문에 겉으로 강해 보이기 위해 애쓸 뿐이다.
퍼펙트라는 엄청난 대기록이 나의 잘못으로 인해 날아갔다는 자책감에 휩싸인 짐 조이스는 상대의 용서와 화해를 떠나 그 어떤 오심보다도 큰 후유증을 앓을 것으로 보인다. 모두가 용서한다해도 그 스스로는 결코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공식기록원들 역시 노히트노런이 8-9회에 접어들면 기도하는 심정으로 순간순간을 대한다. '제발 애매한 타구가 나오지 않게 하소서!’
만에 하나 나의 잘못된 판정으로 대기록이 깨지는 불행한 사태가 일어난다면? 상상만으로도 그 무게가 천근만근이다.
한편 이번 사건은 오심과 그에 따른 야구 법리적인 해석에 무게를 두고 많은 의견들이 난무했지만, 오심 사건을 풀어가는 그들의 모습은 잔잔한 감동을 전해주었다. 오심 다음날 주심으로 나선 짐 조이스에게 배팅오더를 전달하기 위해 나온 사람은 코치나 감독이 아닌 퍼펙트를 빼앗긴 갈라라가 당사자였다. 디트로이트의 짐 릴랜드 감독이 화해와 용서의 의미를 전하기 위해 갈라라가의 손에 오더를 들려 내보낸 것이다.
조이스와 갈라라가는 서로의 어깨를 툭 치는 것으로 앙금을 씻어냈고 이어 수비로 나서는 디트로이트의 선수들과 동료 심판들도 눈물을 훔치는 짐 조이스를 토닥이며 용기를 내도록 다독거렸다. 그리고 오더를 교환한 뒤 덕아웃으로 돌아오는 갈라라가의 머리 위로는 팬들의 뜨거운 박수가 별처럼 쏟아져 내렸다.
이해관계로 얽혀있는 프로스포츠는 늘 심판원을 비롯한 판정관들의 판정을 둘러싼 잡음이 일게 마련이고, 그 때마다 팀들과 첨예한 대립 각을 세울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야구는 스포츠다. 사람이 하는 운동이고 사람에 의한 운동이고 사람을 위한 운동이다.
완벽하면 더할 나위없이 좋겠지만 사람이기 때문에 절대로 완벽할 수 없다. 완벽을 위해 죽어라 노력하지만 성적표는 늘 사람냄새가 풀풀난다. 어제의 미련에 얽매이지 않고 그 완벽하지 못한 부분을 아름답게 풀어나가는 그들의 해법이 오늘 너무나 부럽게 느껴지는 것은 혼자만의 생각일까?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