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디지털 시대의 도전에 직면한 ‘골(Goal)과 홈런’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0.07.01 09: 50

2010 남아공 월드컵이 치열했던 조별 예선리그를 끝내고 토너먼트 형식으로 치러지는 정예 국가들의 벼랑 끝 승부처에 돌입했음에도 심판들의 오심 시비는 연일 끊일 줄 모르고 도마 위를 오르내리고 있다.
과거 월드컵에서도 오심 시비가 간혹 일긴 했지만 이번 월드컵만큼 잡음이 심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최고라고 자부하며 월드컵 무대에 나선 심판들의 실력이나 수준이 전과 비교해 떨어진 것일까?
축구에서 일어나는 오심 시비의 대부분은 반칙장면과 오프사이드 그리고 골(Goal)이 차지하고 있다. 이를 야구에 비유하자면 반칙장면은 수비방해나 주루방해, 오프사이드는 투수 보크 그리고 골은 홈런 정도가 아닐까 싶다.

플레이 도중 누구의 잘못이 큰 지를 가려내는 일이 반칙을 범한 선수를 가려내는 일과 비슷하고, 알 듯 모를 듯 잡아내기 어렵고 헷갈리는 투수의 보크는 오프사이드와 상당부분 유사하다.
특히나 득점과 직결되어 있는 축구의 골과 야구의 홈런은 승부를 결정짓는 바로미터가 된다는 점에서 더더욱 닮은 구석이 많다고 할 수 있다.
지난 2009년 제2회 WBC(월드베이스볼 클래식) 대회를 앞두고 조직위원회(MLB 사무국)는 홈런성 타구에 한해 비디오 판독을 실시하기로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는 경기를 구성하는 다른 부분은 그렇다 치더라도 승패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는 득점 부분만큼은 억울한 경우를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대회가 시작되고 실제로 베네수엘라와 푸에르토리코전에서 비디오 판독이 이루어져 안타로 판정되었던 에르난데스(베네수엘라)의 장타가 판독결과 홈런으로 바뀐 일도 있었다.
야구에 비디오 판독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처음 일었을 때 그 처리 방식이나 모양새 면에서 경기의 흐름이 잘리고 오히려 잦은 어필을 야기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우려, 부정적인 의견을 내보인 사람들이 월등히 많았었다.
보수적 성향인 그들의 비디오 판독에 대한 거부감 이면에는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일종의 전통적 신념이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육안이나 원시적인 중계방법으로는 그간 찾아낼 수 없었던 크고 작은 오심들이 시공을 넘어 화면을 통해 몇 번이고 되풀이되는 비뚤어진 역사에 대한 확인사살(?)은 더 이상 오심이 숨어있을 자리를 내주지 않았고, 결국 2009년 봄, 한국프로야구도 메이저리그의 뒤를 이어 비디오 판독을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시행 이후 채 2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지만 그 결과는 크게 부정적이지 않아 보인다.
인위적으로 경기의 흐름을 끊어야 하는 비디오 판독에 대해 현장이나 야구팬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무겁지만 단순하다. 바로 기계가 억울한 일을 막아주는 안전장치 구실을 해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다시 축구얘기로 돌아와 보자. 월드컵은 축구 선수들에게는 꿈의 무대다. 게다가 4년마다 한 번씩 개최되는 관계로 기회가 자주 돌아오지도 않고 참가자격도 치열한 지역예선을 통과해야만 주어지며, 국가대표로 뽑힌다 해도 평생 한번 서 볼까 말까 한 그런 무대인 것이다.
그러한 희소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월드컵은 늘 전 세계인들의 관심을 한 곳으로 모은다. 물론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본선에서 뛰는 우리 대표팀 선수들의 투지 못지 않게 우리 경기에 성원을 보내는 온 국민들의 함성소리는 시공을 초월, 밤낮 구분 없이 용광로처럼 뜨겁다.
16강 우루과이전에서 젖 먹던 힘까지 쏟아내며 안간힘을 다했던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들이 경기종료 휘슬과 동시에 그라운드에 나동그라지며 눈물을 쏟아내는 장면은 축구를 좋아하고 안 좋아하고를 떠나 온 국민의 가슴을 짠하게 두들겼다.
‘졌지만 잘 싸웠다.’ 
이 말 속에는 태극전사들이 치른 경기뿐만 아니라 결전을 앞두고 오랜 기간의 준비과정에서 쏟아냈을 그들의 피땀 어린 노력들에 대한 고마움까지도 함께 담겨있다. 아울러 국민들은 그들이 노력한 만큼의 성과를 거둘 수 있기를 고대하고, 오심 등의 엉뚱한 해프닝 등으로 우리 선수들이 피해를 입거나 상처받는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하고 언제나 바란다.
그런데 이번 월드컵 축구에서는 각국의 선수는 물론 국민들이 받게 될지도 모를 억울한 피해를 걸러줄 수 있는 안전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이번 16강전의 최대 빅 매치로 꼽히던 독일과 잉글랜드전에서 잉글랜드의  완벽한 동점골이 정규 골로 인정받지 못한 일은 해당 국가로선 충격적 사건이다. 결과적으로 잉글랜드가 독일에게 1-4로 대패, 무릎을 꿇긴 했지만, 잉글랜드의 도둑맞은 골이 정상적으로 인정되어 2-2가 되었다면 이후 경기흐름과 양상은 어떻게 흘러갔을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것이 스포츠다. 
만일 우루과이전에서 우리의 확실한 동점골이 무효로 처리되어 어디론가 증발, 경기에서 패하고 말았다면? 생각만으로도 울화가 치미는 일이다. 축구에 있어 골은 전부나 마찬가지다. 아무리 점유율이 높고 슈팅수가 많다고 해도 메이드 된 골이 없다면 모두 헛일이다. 
심판도 사람이라 실수로, 아니면 위치가 좋지 않아 상황을 놓치는 경우가 있다고 하지만 이해하고 넘기기엔 축구의 골은 그 후유증과 상처가 너무나 크다.
그래서 축구에도 비디오 판독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여기저기에서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지만 FIFA의 반응은 여전히 미온적이다.
오히려 축구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심판원의 수를 늘리는 한이 있어도 기계에 의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단호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야구의 비디오 판독은 야구의 순수성에 손상을 주고 있는 제도인지가 갑자기 궁금해져 온다. 비꼬자고 하는 질문이 아니라 진정 묻고 싶은 말이다.
지금 세상은 스포츠에도 의식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아날로그적인 스포츠가 진정한 스포츠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세상은 생각을 바꿀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 마디로 문명의 이기를 앞세운 디지털 시대가 감성을 지키고 싶어하는 아날로그 시대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야구는 그러한 시대의 도전을 일부나마 어렵사리 받아들인 상황이지만 축구는 아직 버티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스포츠가 갖는 순수함을 지켜내려는 노력과 오심을 바로 잡으려는 압박이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지금, 그 밀어내기 한판의 결과가 향후 어떻게 나타날지, 종목을 떠나 스포츠 경기역사를 다루는 기록원의 눈에는 지금의 대치상황이 그저 혼란스럽기만 하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