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만사 세상살이의 분쟁과 이권을 조정하고 누가 옳고 그른지를 가려주기 위해 존재하는 법률은 실제 일어난 일을 앞에 놓고 재단하는 것이 대원칙이지만, 판단의 정확성을 위해 재판의 대상이 된 사건이 일어나게 된 이면의 이유와 배경을 반드시 살펴보고 넘어가는 것이 또한 상례이다. 이를 부연하자면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말쯤으로 바꿔 말할 수 있겠고, 더 줄여 표현하자면 ‘정상참작’쯤이 되겠다.
잘 알다시피 얽히고 설킨 실타래처럼 무수한 규칙들과 규정들이 난무하는 야구라는 종목이 스포츠 종목 중에서는 그래도 가장 법률이 잘 짜여져 있다는 말을 듣고는 있지만, 세상사가 그렇듯 야구 역시 경기 중 일어날 수 있는 문제와 분쟁들을 미리 예상하고 그에 대비한 100%의 완벽한 답안지를 사전에 만들어 놓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때문에 미처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를 대비해 보험용(?)으로 기원 전(?) 만들어 놓은 것이 있는데 바로 ‘판정관(심판원 및 기록원)의 재량권’이라는 것이다.


야구규칙 9.01(c)항에 의하면 각 심판원에게는 본 규칙에 명백히 규정되어 있지 않은 사항에 대해서는 재량에 의한 제정을 내릴 권한이 부여되어 있다.
이 조항은 한국프로야구만의 조항은 아니다. 메이저리그 공식 규칙집에도 같은 내용이 명시되어 있는데 내용은 이렇다.
각 심판원은 본 규칙에 명시되어 있지 않은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has authority to rule’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문장을 풀면 ‘규칙적용에 대한 권한을 갖는다’ 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이번 2010 두산과 롯데의 준플레이오프 3차전(10월3일. 사직구장)에서 발생한 전준우 타구와 관련된 돌발상황도 규칙집 어디를 뒤져봐도 상공에 떠 있는 깃발에 타구가 맞고 떨어졌을 경우에 ‘어찌 어찌한다’ 라는 말은 쓰여져 있지 않다.
앞서 말한 규칙 9.01(c)항은 바로 이런 때를 대비해 만들어 놓은 조항이다.
6회말 2사 후 롯데 전준우의 플라이타구가 좌익수 머리 위쪽으로 높이 떴고, 좌익수 김현수(두산)가 타구를 쫓다 갑자기 멈춰 선 이후, 타구가 김현수가 서 있는 지점과는 전혀 상관없는 엉뚱한 곳으로 떨어지고 말았는데, 처음에는 김현수가 공을 시야에서 놓치는 바람에 잡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모양새였다.
그러나 마침 바람에 밀려 애드벌룬과 함께 페어쪽 상공으로 떠밀려 온 포스트시즌 홍보 행사용 대형 깃발에 타구가 걸렸던 것으로, 선수를 비롯한 현장의 관계자들은 물론이거니와 팬들도 예상치 못한 이 상황이 과연 어떻게 마무리될 지에 촉각이 곤두선 채, 모든 눈길이 한 곳으로 모아지는 상황이었다.
난감해진 심판진이 그라운드에 모였고, 장외 심판위원장의 의견조율까지를 거친 이후 내려진 최종판정은 전준우의 인정아웃이었다. 기록상은 F7.
그러면 이처럼 심판진이 인정아웃으로 결정을 내린 배경과 이유는 어디에 있었을까? 단순히 규칙집에 없는 내용이니까 9.01에 근거한 심판원의 재량권이 결정배경의 전부였을까?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물론 9.01에 명기된 재량권이 최종결정의 결정적 이유이기는 하나, 그 이면에는 ‘정상참작’이라는 것이 깔려있다. 전준우의 타구가 깃발에 걸리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에서 시작해 타구의 강도와 궤도, 타구를 쫓고 있던 김현수의 수비동작까지를 감안해 실제 일어나지 않은 가상의 그림을 그려본 것이다.
이날 벌어진 돌발상황은 포스트시즌에서는 처음 일어난 일이지만 프로야구 전체 경기를 놓고 보면 사상초유의 사태는 아니었다.
1995년 4월 대전구장에서 열렸던 한화와 OB의 개막전에서 김형석(OB)이 6회초에 때린 타구가 좌익수 쪽으로 날아가다 개막 축하 대형 애드벌룬에 맞고 그라운드 안으로 떨어진 일이 있었는데, 당시 판정도 좌익수 플라이 인정 아웃이었다. 방해물이 없었다면 당연히 아웃 되었을 타구였다는 것이 심판진의 판단이었다.
정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1994년 역시 전주에서 열렸던 쌍방울과 해태의 개막전에서 8회초 이병훈(해태)이 친 타구가 역시 좌익수 머리 위쪽으로 날아가다 개막 축하 대형 애드벌룬에 맞고 그라운드 안으로 떨어졌는데, 당시에는 인정아웃이 아닌 홈런으로 인정을 받았다. 방해물이 없었다면 홈런이 되기에 충분한 타구였다는 것이 심판진의 결정 배경이었다.
이병훈 타구의 인정홈런은 단순한 재량권에 의한 판단만도 아니었다. 규칙 7.05 타자,주자의 안전진루권 조항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있다. 페어의 타구가 확실히 담장을 넘어갔을 것이라고 심판원이 판단했다면 관중이나 새에 맞더라도 홈런으로 인정한다라는 규칙을 그대로 원용한 결정이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드는 의문 하나가 생길 수 있다. 애드벌룬이라고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도 않은데 새에 맞은 경우를 덮어 씌울 수 있는가 하는 문제 말이다.
옥외 경기의 특성상 표 없이도 아무 때나 들어올 수 있는 동물인 ‘새’ 라는 것은 그 출현시기를 미리 예상할 수 없는 존재다. 인공적인 시설물과는 그 존재감에 대한 해석을 달리한다.
올 시즌 말미에 사직구장 (SK전)에서 내외야 그라운드 위를 낮게 떠다니며 한 무리의 새떼가 편대비행 공연을 장시간 펼쳐 보인 일이 있었는데, 경기에 방해가 된다면 심판원이 경기를 잠시 중단시키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보이지 않다가 갑작스레 나타난 새가 타구나 송구, 투구 등의 플레이에 방해가 되었다면 이는 불가항력적인 일로 받아들여 일단 볼 인플레이(플레이의 계속을 의미)상태를 유지시킨다. 물론 앞서 말했듯이 홈런타구가 새에 맞았을 경우는 예외가 된다.
그러면 일반적인 플라이아웃 가능성이 큰 타구가 새에 맞고 땅에 떨어졌다고 한다면? 그대로 볼 인플레이다. 수비측으로서는 난감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행히 새에 맞은 타구를 야수가 땅에 떨어지기 전에 직접 잡아냈다면? 미안하지만 아웃이 아니다. 1987년 이전에는 새에 의한 방해도 볼 데드(플레이의 정지를 의미)로 하고, 이후 후속조치를 심판원의 재량권에 맡겼지만 지금은 규칙이 개정된 상태다. (이상 규칙 7.05에 의거)
말이 나온 김에 동물의 방해에 대해 마저 정리를 해보자. 타구가 새에 맞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새가 타구를 물고 가버렸다면? 이런 황당한 질문을 해오는 분들도 있는데 새의 입 크기를 감안하면 펠리컨 정도면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십분 이해하고 생각해보자. 이때는 타구가 홈런성이면 그대로 홈런이다. 그러나 담장을 넘어가지 않는 타구 즉 안타 또는 아웃가능성이 큰 타구였다면 심판원의 재량으로 판단이 내려지게 된다.
콕 집어서 ‘새’라고 되어 있지는 않지만 개(犬)가 타구나 송구 등을 물어간 경우의 조치는 규칙에 나와 있는데, 볼 데드로 하고 심판원의 판단에 따라 조치하도록 하고 있다.
혹자는 이번 전준우의 타구를 없었던 일로 하고 다시 타격을 하게 만들면 되지 않을까 하는 중립적인 의견을 제시해왔는데, 야구에서 일어난 일을 없었던 일로 무효화시키고 타임머신을 돌려 시간을 거슬러올라가 다시 플레이를 하는 일은 규칙에 나와 있는 특정상황을 빼고는 선택할 수 없는 길이다.
여기서 말하는 특정상황이란 플레이 도중에 조명이 꺼져 선수가 플레이를 전혀 할 수 없게 되었을 경우 등을 말한다. 가령 무사 1루에서 병살타성 땅볼타구를 잡은 수비측이 1루주자를 2루에서 포스아웃 시킨 뒤, 이어 1루에 공을 던지는 순간 조명이 나가 어떤 플레이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판단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면 이 플레이는 시작 점으로 되돌아간다. 즉 조명이 들어온 이후 다시 무사 1루에서 공격을 재개해야 한다. 이유는 완성되지 않은 플레이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전준우의 인정아웃에 득달같이 달려나온 로이스터 롯데감독의 항변에 초점을 맞춰보자.
로이스터 감독은 그 구장만의 로컬 룰에 따라 깃발에 맞은 것을 인플레이 상태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미리 그러한 규정을 만들지 않았다면 적용 불가능하다. 로컬 룰이란 그 지역이나 구장만의 사정이나 특색을 반영한 특별 룰로써 언제나 변하지 않는 시설물이나 구조물들을 감안해 미리 만들어 놓고 적용하겠다고 공표한 규칙을 말한다. 고정적인 시설물이 아닌 언제 어떤 상태로 변할 지 모를 성질을 가진 이동가능 시설물에 대해서는 일괄적인 로컬 룰을 만들어 적용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따를 수 있다.
아직 우리는 갖고 있지 않지만 해외 돔구장 같은 경우는 천정이 설치되어 있는 관계로 타구가 천정이나 천정에 매달려있는 구조물 등에 맞는 상황을 미리 가정해서 로컬 룰을 만들어 놓고 있다.
현재 도쿄 돔만의 특별 룰을 살펴보면 타구가 페어나 파울지역 구분없이 천정에 맞고 떨어지면, 낙하한 지점이나 야수가 닿은 지점에서 페어와 파울타구 여부를 판단하고, 야수가 직접 잡아내면 타자 아웃을 인정하고 있다. 돔 구장 개장 당시와 또 달라진 로컬 룰이다.
끝으로 ‘좌익수 김현수가 그 타구를 잡아낸다는 가정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 하는 문제다.
물론 최악의 경우 김현수가 타구를 시야에서 놓치거나 포구 과정에서 미스가 발생해 잡지 못할 수도 있다. 그것이 야구다. 그렇지만 결말이 불확실한 상황을 놓고 가상의 상황을 미루어 판단하는 일에 있어서는 일반적으로 누구나가 생각할 수 있는 보편성과 당연성에 그 주안점을 둘 수밖에 없다.
반대로 그 타구를 어떻게 못 잡느냐고 물어왔을 때의 답변도 감안해야 한다. 그래서 타구의 질과 강도 그리고 궤적, 여기에 수비수의 위치이동, 외야 상공에 부는 바람의 세기 등을 모두 감안해서 판정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야구에서 말하는 ‘재량권’이며 ‘정상참작’이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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