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이 거둔 성적을 들여다보면 예전과 같은 종합 2위라 하더라도 내용상 무언가 다른 느낌을 받게 되는데, 그것은 메달을 획득한 종목수의 다변화와 메달 효자종목의 변이에서 찾을 수 있겠다.
과거 대한민국의 주력종목은 복싱과 레슬링 그리고 유도 등, 주로 헝그리 정신을 강조하는 격투기 위주로 구성되어 왔다. 그러나 전체적인 소득이 늘고 경제적으로 윤택해지면서 사람들의 운동에 대한 생각과 시선이 달라졌고, 레저와 스포츠를 아우르는 레포츠 종목들을 직접 경험하는 동호인 위주의 단체들이 늘어나며 스포츠는 보는 것에서 즐기는 것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 사격, 볼링, 골프, 수영, 사이클, 당구, 인 라인 스케이트 등 저변 확대에 성공한 많은 레포츠 연관 종목들이 아시아 정상권의 실력을 뽐내며 대한민국 메달레이스에 큰 힘을 실어 주었고, 이러한 변화의 흐름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란 전망은 여전히 유효하다.

올 한 해 프로야구는 흥행 면에서 여러 가지 악재(날씨, 월드컵, 전염병, 조기 순위확정 등)가 수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3년 연속 500만 관중을 돌파한 동시에 역대 최다 관중 신기록(592만 8626명)을 새로 갈아치웠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한 원인은 여러 가지를 꼽을 수 있지만, 그 중 무시할 수 없는 원동력 한 가지를 꼽으라면 단연 ‘야구의 대중화 및 생활화’라고 할 수 있다. 야구 역시 보는 스포츠에서 즐기는 스포츠로의 인식 전환이 동반된 것이다.
최근 국민생활체육 전국야구연합회 소속 팀은 불과 1-2년 사이 2000개 팀 이상이 새로 등록, 그 수가 6000개 팀에 육박하고 있고, 여기에 등록된 선수 수 만도 20만 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생활체육협회에 등록하지 않고 즐기기 위한 목적으로 자기들만의 리그를 운영하고 있는 곳도 상당수 있는 것을 감안하면 대략 사회인야구 팀 수가 1만개는 넘었을 것이라는 것이 야구계의 추론이다.
그러나 이처럼 뜨거운 야구 열풍에도 한가지 아쉬운 구석은 있다. 그것은 바로 역사를 기록하는 일이다. 물론 취미생활의 일환으로 접근하는 야구지만 야구가 기록의 경기라는 점을 십분 활용하면 더더욱 풍성하고 의미 있는 취미활동으로의 승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제주시 야구연합회가 최근 몇 년간 일관되게 보여주고 있는 일련의 야구기록 정리작업들은 타 지역 연합회나 기타 사회인야구 리그가 본 받을 만한 사례라고 여겨진다.
제주연합회는 모든 경기를 공식 야구기록법에 근거해 매 경기 기록지를 작성하고, 이 기록지를 바탕으로 대회에 참가한 해당 팀과 개인 기록을 모두 통계화해 집계처리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제주뿐 아니라 대부분의 다른 지역도 시행하고 있는 작업이지만, 제주는 여기에서 진도가 한발 더 나아간 모습이다.
통계작업을 거친 기록들을 대충 아무 곳에 보관하거나 낱장으로 방치하지 않고 해마다 기록집을 발간, 책으로 펴내고 있다는 점이다. 매년 야구기록을 모아 발간한 기록집의 두께는 웬만한 사전 이상으로 두텁고, 내용 역시분량만큼이나 방대하다.
또한 대회 중에 달성되는 대기록에 대해서는 공증을 거쳐 인증서를 발행하고 있다. 시즌이 끝나고 연말이면 연중 누적된 개인기록을 바탕으로 골든 글러브를 선정해 시상까지 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은 곧 제주의 야구역사를 기술하는 일로 귀결된다. 어떤 운동이든 운동의 개념만으로 접근한다면 취미생활로는 충분하겠지만 전통이나 역사를 새로이 만들어 내기는 어렵다. 각국의 프로야구가 지금처럼 풍성한 역사와 전설 그리고 전통이 살아 숨쉴 수 있는 너른 마당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기록이라는 문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인류 태초의 역사가 그림으로 확인되고, 세상을 바꾸는 큰 힘이 한 조각의 메모에서 시작되듯이 기록은 역사를 만들고, 퇴적층처럼 하나 둘 쌓여가는 역사는 전통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야구역사를 기술하는 작업보다 제주연합회의 도전(?)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은 야구역사를 기술하는 사관을 길러내는 작업이다.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려면 올바른 눈을 가진 사관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은 상식이다. 제주는 제대로 된 야구경기 역사를 기록해내기 위해 제대로 된 기록원을 기르는데 힘썼고, 그들에게 주기적으로 재교육의 기회를 마련해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현 야구연합회장의 관심과 애정이 있었다. 야구기록에 대한 깊은 조예와 사랑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번에도 국민생활체육 제주연합회는 오라구장 회의실에서 제6기 야구기록강습회(11월 27일~28일)를 열었다. 평소와 다른 부분이 있다면 KBO에서 공식기록원이 파견되어 이틀간 기록강습회를 대신 주관했다는 것. 제주연합회의 요청이 있었다. 6주간에 걸친 제주도 야구교실 과정의 한 부분을 기록원 재교육과 신임 기록원 선발을 위한 야구기록강습회로 채운 것이다.
수도권에서 열리는 대단위 강습회에 비해 참석인원과 규모는 비록 작았지만 강습회에 참가해 야구기록이라는 낯선 세계를 처음 접한 수강생들의 눈은 겨울 밤이 깊을수록 오히려 또렷해져 갔다. 첫날 일정을 마치기로 예정한 시간(오후 6시)보다 두어 시간이나 지나서야 야구 기록얘기가 끝이 났다.
그리고 이튿날 오전 남은 이론 강습을 마저 끝내고, 오후에는 오라구장에서 열리고 있는 사회인야구 경기를 직접 기록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주전선수라서 실전기록시간에 같이하지 못하고 그라운드로 뛰어나가야 하는 수강생도 여럿 있었지만, 남은 사람들은 배운 기억을 더듬어가며 기록지를 한 칸 한 칸 기록부호로 메워나가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비공식적 채널을 통해 지방에 거주하는 야구연합회를 대상으로 비정기적 기록강습회를 가끔 열어왔지만, 이번 제주를 필두로 KBO 기록위원회는 매년 동절기를 이용, 강습 요청이 있는 지방연합회를 대상으로 공식기록원을 파견해 공식적인 야구기록강습회를 실시할 예정이다. 시간적인 일정상 요청이 있는 모든 지역을 한꺼번에 소화할 수는 없으므로 매년 한두 곳에 한 해 기록강습회를 열 계획이다.
돌이켜보건대 이번 제주로의 여정자체는 비록 짧았지만, 기록하는 야구와 기록하지 않는 야구의 차이가 어떤 결과를 낳는 지 그리고 역사를 만드는 작업을 소홀히 하지 않는 리그에서 뛰는 사람들의 자부심과 야구에 대한 애정의 크기가 얼마만큼인지를 새삼 확인해 볼 수 있는 좋은 계기였다고 생각된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
<사진 위> 제주에서 열린 기록강습회 모습
<사진 아래> 제주 야구연합회에서 매년 펴내고 있는 야구기록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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