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가서는 아니 될 길,‘몰수경기’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0.12.22 09: 13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경기 전 제출한 타순표에 적어 넣은 주전선수인데 경기개시 시간이 임박하도록 야구장에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어찌해야 할까?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감독은 부랴부랴 아직도 도착하지 않은 선수를 대신해 대타를 기용하기로 마음먹고 주심에게 대타 통보를 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타로 통보한 선수마저 보이지 않았다. 누구를 또 대신 내보내야 할까 고민을 하고 있던 차, 상대편 감독이 주심에게 다가와 뭔가 얘기를 건넸다.
그리고 잠시 후, 주심은 해당경기를 몰수경기로 선언했다. 주심의 청천벽력 같은 선언에 깜짝 놀란 감독이 득달같이 달려가 어필해봤지만, 한번 내려진 결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왜 몰수게임입니까?”
“선수가 도착을 하지 않아 대타를 냈는데, 그 선수까지 경기에 나설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몰수게임이 당연합니다.”
그날 저녁, 몰수경기를 당한 팀의 선수들은 울분을 삭이려 한 자리에 모였다. 그러다 프로나 아마의 공식적인 야구규칙에 부합하는 결정이었는지를 확인해보자는 제안이 들어왔고, 이내 전화기를 들었다.
답부터 얘기하자면 몰수경기가 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공격 측의 선수가 도착하지 않아 경기에 나올 수 없는 상황이라면 다른 선수로 얼마든지 대타를 낼 수 있다. 앞에서 말한 상황대로 첫 번째 대타까지 나올 수 없다면, 또 다른 제2, 제3의 대타를 낼 수도 있다. 다만 대타로 통보되고 경기에 나서지 못한 선수는 해당 경기의 잔여분에 출장하지 않으면 된다.
물론 경기장에 나와있는 선수의 숫자가 최소 9명은 유지가 된다는 것을 전제로 말이다. 야구경기를 치르는데 있어 최소한의 성립조건인 9명의 선수 충족 수에 미달한다면 규칙<4.17>에 의해 몰수경기가 맞다. 그러나 이날 몰수경기를 당한 팀의 선수 수는 여유가 있는 상황이었다.
혹시나 해서 선수가 도착하지 않아 문제가 된 타순이 지명타자 타순이었는지를 확인했지만 지명타자가 아닌 일반 야수의 타순이었다. 지명타자라면 꼬투리가 생길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규칙에 따르면 지명타자는 상대 선발투수가 바뀌지 않는 한, 최소 한 번의 공격은 마쳐야 다른 선수로의 교체가 가능하다. 이를 근거로 당장 교대가 불가능한 지명타자가 경기장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경기가 더 이상 진행될 수 없다고 수비 측이 막무가내로 우긴다면, 한심하고 갑갑하지만 난감한 일이 된다.
또 다른 몰수경기가 하나 있다. 동점상황 최종회 1사 주자 1루에서 투수에게 보크가 선언되었다. 수비 측 감독은 투수의 동작에 문제가 없었다며 심판의 판정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옥신각신 감정 섞인 설전 끝에 화가 단단히 난 심판은 몰수경기를 선언하고 퇴장해버렸다. 
급작스러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해당 리그 운영회의가 열렸고, 해당 경기의 두 팀에 조정안이 권고되었다. 하나는 주심의 판정을 받아들여 1사 2루 상황에서 경기를 속개하는 방안, 다른 하나는 다음날 처음부터 아예 재경기를 벌이는 방안의 두 가지 조정안이었다. 
보크 선언을 없던 일로 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곤란하다 하여 벌어진 일을 무효로 하는 타임머신 판정은 가장 최악이다.
여기에서 따져볼 일은 어떤 조정안을 받아들였는지가 아니라, 조정안 자체의 법적 근거다. 첫 번째 조정안은 몰수경기 선언을 취소하고, 선언 시점에서 경기를 계속 이어간다는 말인데, 규칙적으로 몰수경기를 일시정지경기로 바꿔 치를 수 있다는 조항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 몰수경기를 당한 팀이 제소를 신청하고, 제소를 받아들인 운영위원회가 몰수경기의 정당성을 심사해 이후 조치를 내리는 것이 순서이다. 그런데 규칙에 명시된 제소경기 관련 규칙<4.19>을 들여다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심판원의 재정이 규칙에 위배되었더라도 그 위반 때문에 제소 팀이 이길 수 있는 기회를 잃었다고 판단하지 않는 한, 재경기를 명하지 않는다’
이상 몰수경기와 제소경기의 규칙을 종합해보면, 몰수경기 선언이 잘못되었다고, 그래서 제소 팀이 이길 수 있는 기회를 잃었다고 판단, 제소 팀의 이의를 받아들였다면 재경기를 치러야 한다는 쪽으로의 유권해석이 가능해진다. 즉 일시정지경기보다는 재경기를 치르는 쪽이 법적으로 좀더 합리적이라는 말이다.
이상은 사회인 야구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몰수경기의 사례들이다. 물론 이것 말고도 여러 가지 이유로 몰수경기가 일어난다고 한다. 가장 흔한 사례는 아무래도 선수 수의 부족이다. 
예정된 경기개시 시간에 맞춰 팀이 도착하지 못해 몰수경기가 선언되는 경우가 그 다음을 차지한다. 매몰찬 결정이지만 열악한 구장 사용 환경상 마냥 기다려 줄 수만은 없는 것이 현실이라 어쩔 수 없다고 얘기한다. 이해는 가지만 몰수경기 선언이라는 것은 그 이유가 어찌되었든 최악의 상황이자 결정이다. 
야구규칙 <4.15>에는 몰수경기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기술되어 있다. 정당한 사유없이 경기개시 시간에 플레이 볼이 선언되었음에도 팀이 5분 이상 경기장에 나오지 않거나(도착 불문), 경기지연 또는 단축을 위해 술책을 썼을 경우, 팀이 경기 속행을 계속해서 거부했을 경우, 경고에도 불구하고 고의로 집요한 반칙행위를 반복했을 경우, 퇴장명령을 받은 선수가 오랜 시간 이에 따르지 않을 때, 경기 재개에 필요한 조치를 명하였음에도 홈 구단이 따르지 않을 때 등등….
경기시간에 늦거나 선수 수의 부족 사유 외에도 야구 몰수경기의 성립조건은 상당히 다양한 편이다. 그러나 그 사유들마다 전제되는 말이 꼭 따라 붙는데, 그것은 정상적인 경기 진행을 위한 정상참작과 최선의 노력을 얼마나 기울였느냐 하는 것이다.
어느 팀이 경기개시 시간에 늦었더라도 지각 사유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고 인정되면 몰수경기는 취소되고 훗날 일정을 다시 잡아 경기를 치르게 한다. 또한 어느 일정 시간을 기다려주면 경기를 치르는 것이 가능할 경우, 경기개시 시간을 약간 늦춰서라도 경기를 거행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올 시즌(2010) 퓨처스리그(2군 리그)에서 어느 한 팀이 경기개시 시간까지 경기장에 도착을 하지 못하는 바람에 약 30분 가량 경기 시작이 지연된 일이 있었다. 한 여름 휴가철 교통체증에 의한 여파로 지각을 했던 것인데, 이미 경기장에 도착해 있던 홈 팀의 배려로 무탈하게 경기를 마칠 수 있었다. 
만일 법대로 제 시간이 지나도록 경기장에 도착하지 못한 팀에 심판이 몰수경기 패를 선언했더라면? 법에 의거 어렵지만 추상 같은 판단을 내린 심판에게 박수를 쳐주어야 할 일이었을까? 적어도 프로야구에서라면 박수를 받기 어렵다. 해당 팀들의 승패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구장을 찾은 야구팬들이 온전한 야구경기를 관전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과 배려를 아끼지 말아야 하는 것이 심판을 비롯한 관계자들의 의무이다. 그리고 가외로는 몰수경기 결정이 몰고 올 후 폭풍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환경은 다르지만 직업야구건 취미야구건 몰수경기는 가능한 한, 돌아서 피해가야 할 제정이자 규칙인 것이다. 다음에는 몰수경기와 연관된 뒷얘기 하나를 다뤄볼까 한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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