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무사 1루의 희생번트, 과연 정석인가?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1.02.22 08: 41

2003년 타자의 희생번트 기록 판단에 있어 현실적인 플레이를 반영하는 쪽으로 기준선을 바꿔 적용한 이후, 희생번트 빈도수의 변화추이를 살펴보면 2006년(806개)을 정점으로 521개(2008년)선까지 점차 줄어들다가 지난해인 2010년 다시 700개를 상회(733개)하는 양상으로 그 수가 대폭 늘어난 것을 볼 수 있다.
그에 비례해 팀 당 133경기를 기준으로 시즌 희생번트 수가 100개를 넘어선 팀도 이전 한두 팀 정도에서 SK(147개)와 삼성(111개) 그리고 KIA(109개) 등 3개 팀으로 덩달아 늘어났다.
줄어드는 기미가 완연하던 희생번트의 수가 다시 늘어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물론 희생번트 숫자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소는 뭐니뭐니해도 각 팀 감독들의 성향이다. 

작전에 대한 결정권을 쥐고 있는 감독들의 해법이 공세적인지 아니면 수세적인지, 같은 공격적인 성향이라 해도 차근차근 점수를 뽑아내는 타입인지 아니면 기회가 왔다 싶을 때 강공으로 대량득점을 노리는 타입인지, 찬스에서 선수들에게 맡기는 스타일인지 아니면 감독이 직접 플레이에 관여하는 스타일인지의 성향에 따라 희생번트의 시도 수는 큰 차이를 보이게 된다.
다음은 각 팀의 공격력과 투수력의 균형 여부가 번트 숫자를 좌우한다. 중심타선을 비롯 전체적인 공격력이 강한 팀들은 득점기회를 잡는 회수가 잦아짐에 비례해 희생번트 시도는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반면 공격력이 빈약한 쪽에 속하는 팀들은 어렵사리 찾아온 기회를 어떻게든 득점과 연결시켜 보려 하기 때문에 자연 소극적인 선택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투수력 역시 희생번트 시도 수를 좌지우지한다. 팀의 투수력이 강해 한두 점 싸움에 강점을 보이는 팀들은 승부 처에서 대량득점보다는 확률적인 기대치에 의존해 필요한 만큼의 점수를 뽑아내려 하기 때문에 희생번트 시도가 잦아지게 된다. 반면 투수력이 약한 팀들은 한두 점의 리드가 안정권이 될 수 없기 때문에 기회가 왔을 때 되도록이면 많은 득점을 얻어내려고 애를 쓴다. 따라서 번트보다는 강공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밖에도 희생번트 작전을 선택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선택의 배경에는 반드시 공통적인 사고가 존재한다. 바로 희생번트가 득점확률을 높여준다는 믿음이다. 대부분의 희생번트가 무사 1루에서 기록된다고 가정했을 때 1루주자를 스코어링 포지션인 2루에 옮겨 놓고 단타 한 방에 득점을 기대하는 작전은 겉으로 보기에도 상당히 달콤한 미끼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믿음과 기대치를 전제로 하는 희생번트가 현실에서 감독의 의도에 부합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못하다. 좀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문제의 본질은 희생번트 작전 자체가 아니라 맹목적인 선택과 시도에 있었다. 
과거 언론에서 아웃카운트와 주자 상황별 득점확률을 근거로 보내기 번트 작전 시도가 통계적으로 무의미한 작전임을 만천하(?)에 공개한 적이 있었는데, 한두 시즌이 아닌 20년치 이상의 자료를 가지고 대입해도 같은 결과가 나오는지를 우선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스포츠 투아이>에서 집계 제공한 1988~2009년 사이의 통계자료를 근거로 살펴보면 무사 1루 상황의 득점확률은 43%였다. 이후 아웃카운트 하나를 버려가면서 루상의 주자를 2루로 옮겨놓았을 때의 득점확률은 무사 1루에서의 확률보다 적어도 더 높게 나와야 희생번트의 실효성을 이야기 할 수 있는데, 1사 2루 상황의 득점확률은 오히려 40.9%로 번트를 시도하기 전 상황보다 약 3% 정도 낮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대량득점 측면에서도 희생번트 시도는 통계상 부정적인 측면이 더 강했다. 무사 1루에서 3점 이상 득점을 올릴 수 있는 확률은 11.4%였지만, 1사 2루에서는 7.4%로 확률이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 아웃카운트 하나를 희생시켰다는 사실이 이후 공격에 있어 운신의 폭이 좁아지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증거다.
2득점과 연결되는 확률도 12.2%에서 9.2%로 역시 1사 2루 상황의 득점확률이 낮게 나타났다. 
결과가 이쯤 되면 번트를 이용해 주자를 2루로 보내는 작전이 득점확률을 높이는데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작전임을 부인하기란 매우 어려워 보인다. 희생번트가 득점확률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2점 이상의 대량득점과 연결될 수 있는 기회 자체까지도 원천 봉쇄하는 악의 축(?)라는 것이 통계로 검증되었기 때문이다. 
자! 그러면 희생번트 가치론과 희생번트 무용론의 싸움에서 무용론이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었다고 단정지어도 이제 무리는 없는 것일까? 그러나 희생번트가 그 가치를 인정받을 길을 완전히 잃어버렸다고 속단할 수 없는 이유 역시 통계자료 안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1사 2루 상황의 득점확률이 무사 1루의 득점확률보다 앞서는 경우의 수가 딱 한가지 존재한다. 바로 1득점과 연결될 확률에서다. 무사 1루에서 1득점을 얻을 확률은 19.4%지만 1사 2루에서 1득점을 얻을 확률은 약 5% 가량 높은 24.3%였다.
이 수치는 1점이 간절한 상황하에선 보내기 번트를 이용해 주자를 2루에 갖다 놓는 것이 좀더 확률적으로 효율성 높은 작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선취점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경기라던가, 경기 종반 한 점 싸움이 전개되는 상황하에선 희생번트를 선택하는 편이 밀어붙이는 것보다 결과적인 면에서 팀에 보다 득이 되는 작전임을 대신 말해주고 있다. 
이상 살펴본 1사 2루 상황의 득점 수별 확률수치는 1점이 아닌 대량득점을 목표로 했을 때 희생번트가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는 1차 논리와 한 점이 절실한 상황에서는 번트가 확률 면에서 결코 나쁜 작전은 아니라는 2차 논리로 양분되고 있다.
오래 전, 번트에 관한 단상에서 비겁한 번트와 정당한 번트에 관한 내용을 다루며, 번트라는 행위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상대의 약점을 이용함에 있어 방법의 정당성이 핵심이라는 논조로 결말을 맺은 적이 있었다.
희생번트 역시 같은 맥락으로 귀결지어 볼 수 있다. 전담 마무리 투수의 안정감, 주자들의 주력과 센스, 타자의 작전 소화능력, 경기의 흐름 등에 따라 꼭 필요한 순간에 선택되는 희생번트는 가타부타 논쟁거리가 전혀 될 수 없는 야구의 정석이라 할 수 있지만, 정황상 설득력이 없어 보이는 맹목적인 희생번트 시도는 경기의 흥미를 떨어뜨리는 동시에 통계적 득점확률을 근거로 한 번트 무용론의 영원한 제물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이다.
중국의 고대가요 문집인 <시경>에 이런 말이 나온다.
“심즉려 천즉게(深則厲 淺則揭)”
‘물이 깊으면 옷을 벗고 알몸으로 건너야 하고, 물이 얕으면 바짓단을 걷고 건너야 한다’라는 뜻이다. 
지금의 상황을 잘 분석하고 상대가 어떻게 나오는지에 따른 유연한 대응이 필요하다라는 말쯤으로 의역해 볼 수 있는데, 희생번트의 정석 역시 이 말 속에서 찾아야 할 듯싶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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