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가 친 타구를 안타로 판정할 것인지, 아니면 실책으로 판정할 것인지를 놓고 애매한 순간마다 머리를 싸매야 하는 공식기록원에게 있어 타구판정은 영원한 숙제이자 가장 풀기 어려운 난제이다.
그 어떤 법전보다 잘 만들어졌다는 야구규칙에 안타는 어떤 상황에서 기록되는 지가 조목조목 설명되어 있긴 하지만, 속 내용을 그림으로 옮겨보면 다분히 추상적이며 때론 막연하기까지 하다.
사실 안타와 실책의 구별에 있어 80~90%의 타구는 일반 야구팬들도 쉽게 가려 판단해 낼 수 있을 만큼 명백한 경우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결국 10~20%의 타구다.

과거 기록강습회에서 안타와 실책을 어떻게 구별하고 판정하는 지에 대해 이론으로만 접근하는 설명위주의 강의에 많은 수강생들은 아쉬움을 나타내곤 했었다. 알 것도 같지만 뭔가 확연히 떠오르지 않는 그림이 답답함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안타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가장 이해하기 쉽게 답을 단다면 그것은 이렇게 표현할 수 있겠다. ‘야수가 보통 수비로는 처리할 수 없었던 타구’라고. 실제로 안타관련 조항 곳곳에 보통수비라는 단어가 자주 언급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면 보통 수비라는 것은 무엇이며 어떤 기준을 가지고 설정된 개념인지를 따져보는 것이 자연스런 다음 순서일 것이다.
흔히 안타를 일컬어 ‘타자가 아웃 될 염려 없이 안전하게 출루하기에 충분한 타구’라고 말을 하는데 이는 타자의 공격적인 부분에 주안점을 두고 하는 말이다. 타구의 강약과 코스, 타자주자의 발 빠르기 등을 고려해 판단을 내리는 경우다.
그러나 안타는 타자의 공격적인 행위로만 판단을 내리기엔 너무나 복합적인 얼굴을 갖고 있다. 타구가 강하더라도 수비수가 충분히 대처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다면 안타가 아닌 실책이 된다. 타구의 코스가 아무리 안타성 코스라고 하더라도 수비수가 통상적인 자리에서 벗어나 그 길목을 지키고 있었다면 그 타구 코스는 안타성 코스가 아니다.
또한 타자주자가 아무리 빠른 발을 가진 준족이라 하더라도 수비수가 그에 대한 대비를 이미 하고 있었다거나, 타자주자가 열심히 뛰지 않는 상황이라면 주자의 빠른 발은 안타 판단에 있어 무의미한 항목으로 변한다.
따라서 안타는 타자의 공격적인 모양새 뿐만 아니라 수비측이 가져가는 여러 가지 변수를 함께 고려해 판단을 내려야 균형 있고 설득력 있는 판정이 될 수 있다.
그러한 관점에서 접근해 볼 때 보통수비란 바로 공격적인 측면이 갖는 일방성과 허술함을 보완하기 위해 접근하는 판정 방식의 또 다른 기준이라 하겠다.
일본프로야구는 2008년 야구규칙에 명시된 보통수비에 대한 보다 자세한 개념정리를 별도의 세칙을 마련해 문서화시켜 놓은 바 있다. 내용은 대충 이렇다.
‘날씨와 그라운드 상태를 고려한다는 것을 전제로, 리그의 각 수비위치별 평균적 기량을 기준으로 야수가 최선의 플레이를 하지 않았거나 동일 수비위치의 평균적 기량에 견주어 모자랐다고 판단되면 실책을 기록할 수 있다’
경우의 수 하나하나를 모두 규칙에 실어 가급적이면 판정과 관련된 논란거리를 만들지 않으려 하는 일본프로야구가 갖고 있는 정서가 안타 판정관련 규칙에도 가지를 뻗은 것이다. 이는 일본 야구계 역시 타구 판정에 있어 어쩔 수 없이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한계를 조금이라도 극복해보고자 하는 나름의 노력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러면 한국프로야구는 타구판정과 관련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까? 공식기록원들은 시범경기가 열리기 전, 구단 별 연습경기를 찾아 다니며 타구판정에 대한 정확성과 일관성을 키우기 위한 별도의 훈련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한 명의 열외 없이 전원이 같은 타구를 놓고 생각을 교환하고 이견이 생기는 부분을 집중 분석해 판단기준의 범위를 좁히려는 시도가 프로그램의 주된 내용이자 목적이다.
하나의 타구임에도 보는 각도와 위치에 따라 달리 보이는 현상을 피부로 느껴 보고 시각적인 허상에서 범할 수 있는 오류가 어떤 것인지를 확인하는 작업도 병행된다.
수 년 전, 8개구단 기록원들과의 합동세미나에서 타구판정과 관련된 동영상 자료 몇 가지를 틀어놓고 안타와 실책에 관한 판단을 내려보도록 시도한 적이 있었다. 시즌 중 일어났던 가름이 확실치 않은 타구 몇 가지를 느린 화면을 통해 분석하면 타구판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같은 상황을 놓고도 사람마다의 판정과 의견은 여전히 갈렸다. 느린 화면이 도움이 되는 상황도 있었지만 반대로 느린 화면이 정상적인 시야에서 내린 판정과 비교해 오히려 상황을 왜곡시키는 결과를 낳는 경우도 있었다.
막연하게 생각해 심판원처럼 그라운드 안에 들어가서 타구를 보면 판정미스를 줄일 수 있을 것 같지만, 지금까지 모색했던 많은 접근 방식들의 결과를 종합해보면 그 또한 완벽과는 거리가 있다.
기본적으로 야구기록원은 현실적으로 현장과는 괴리감이 있는 일정 거리에서 상황을 보고 판단을 내린다. 따라서 자리가 주는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그 한계가 전체적인 그림을 보는 데는 오히려 유리한 부분으로 작용을 한다. 숲에 들어가면 나무는 볼 수 있겠지만 전체적인 숲의 크기와 모양새는 가늠하기 힘든 것과 같은 이치다.
타구판단이 어려운 이유 중의 또 한 가지는 타구성질상 같은 타구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매끈하지 않은 흙과 잔디결로 이루어진 그라운드, 실밥이 도톨도톨 올라온 둥근 공, 여기에 둥근 방망이. 사람마다 저마다의 얼굴이 각기 다르듯 타구 역시 저마다의 성질이 모두 다르다. 불규칙 타구가 어쩌다 한 번씩 나오는 것 같지만 평범한 실책에도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타구의 불규칙이 들어있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역설적으로 얘기하자면 야구에서 규칙적인 바운드의 타구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오늘도 타구를 놓고 이런저런 얘기를 곁들이고 비슷한 유형의 과거 기억 속 타구를 끄집어내며 판정기준을 논하지만, 무형의 안타와 실책이 주는 고민은 오래 전 느꼈던 고민과 별반 다르지 않다. 경험이 가장 큰 재산이긴 하지만 그 경험으로도 완전하게 좁혀지지 않는 거리. 그런데 그 불확실성이 야구의 가장 큰 매력인 것을 어쩌겠는가.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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