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야구기록의 두 얼굴, 공식기록과 고과기록 (1)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1.07.12 09: 38

맡고 있는 일의 성격에 따라 프로야구 기록업무 관련 종사자들을 크게 가르면 야구 경기역사를 적는 KBO 소속의 공식기록원들과 전력분석 및 선수 평가자료를 만드는 임무를 담당하고 있는 각 구단 기록원들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 두 부류의 야구기록원들이 갖고 있는 공통점이 야구경기에서 일어나는 상황들을 부호와 숫자를 이용해 기록지에 빼곡히 적어나가는 것이라고 한다면, 다른 점은 같은 경기상황을 앞에 놓고도 필요성에 따라 그 해석을 얼마든지 달리할 수 있다는 것을 가장 큰 차이로 들 수 있겠다.
공식기록원들에 의해 작성되는 공식기록은 역사로 치자면 정사(正史)에 해당한다. 경기에서 일어난 사실들을 최대한 왜곡 없이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일이 그들의 주된 임무다. 물론 타자의 안타나 실책, 투수의 자책점과 구원승 결정 등 역사를 기록하는 과정에서 기록원의 주관적인 생각과 판단이 어쩔 수 없이 개입될 수 밖에 없는 부분이 상당수 존재하고 있지만, 룰 미팅과 여러 훈련 프로그램을 통한 판정의 통일성과 일관성 유지에 공식기록원들은 많은 신경을 기울인다.

반면 구단기록원들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페이퍼는 성격상 야사(野史)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근간은 정사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그 위에 역사의 이면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정보들을 하나 둘 덧입혀나간다. 같은 안타라도 점수차나 주자상황에 따라 매겨지는 점수가 다르고, 같은 좌전안타라도 타구의 강도를 구분 지어 기록한다. 잘 맞은 안타와 빗 맞은 안타에 의미차이를 두는 것은 타자의 컨디션과 타격사이클 흐름을 예측하는데 있어 중요한 잣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론 안타보다 땅볼 한 개가 더 많은 가산점을 부여 받는 경우도 있다. 흐름상 승부처에서 나온 요긴한 진루타는 승부가 기운 다음 때려낸 안타보다 고과기록에선 훨씬 값진 대접을 받는다. 객관적 자료인 공식기록에서는 별도의 진루타 항목이 따로 없다. 1타수 무안타. 진루타이건 선행주자를 아웃 시켰건 땅볼은 다 같은 땅볼일 뿐이다. 잘 맞았건 빗 맞았건 안타는 그냥 안타인 것 처럼.
고과기록 중 이채로운 것 한가지를 예로 들면, 타자가 아웃이 되었더라도 투수를 얼마나 끝까지 물고 늘어지며 괴롭혔느냐에 따라 고과점수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이다. 팀마다의 기준치가 약간씩 다르기는 하지만 통상 7구 이상 던지게 만들면 고과상 플러스 점수를 받을 수 있다. 
요즘 ‘커트 맨’ 이라는 별명을 얻고 있는 KIA의 이용규는 투수들이 상대하기 가장 껄끄러운 타자를 꼽을 때면 꼭 빼놓지 않고 거명되는 선수인데, 한 타석당 평균 4.25개(리그 5위)의 공을 던지게 만드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 타자에게 공 4~5개 정도를 던지게 만드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하냐고 반문할 지 모르지만, 9이닝 동안 투수가 27명의 타자만을 상대해 퍼펙트를 했다 가정하더라도 약 115개의 투구수가 필요할 만큼의, 투수에게 체력적으로 많은 부담을 가져다 줄 수 있는 항목의 통계치라고 볼 수 있다. 
참고로 2010년 8월 29일 이용규는 광주 넥센전에서 언더스로 박준수(넥센)를 상대로 무려 공 20개를 던지게 함으로써 국내프로야구 한 타자 상대 최다 투구수 기록(종전 17구)을 갈아치우게 만들었는데, 우익수 플라이로 물러나긴 했지만 박준수의 강판을 불러왔고 이용규의 고과점수는 안타 부럽지 않았다. 
이 외에도 희생타와 도루, 4구와 삼진, 병살타와 수비실책, 여기에 사인미스와 주루미스까지 팀에서 집계하는 선수대상 고과항목은 투,타별로 각 100 항목을 훨씬 웃돌 만큼 내용에 있어 꽤나 세밀하고 양에 있어 아주 방대하다.
선수 연봉산정에 있어서의 기초자료는 공식기록상 객관적으로 나타난 통계수치를 우선으로 하지만, 여기에 팀이 선수 개인별로 작성한 고과표가 더해져 가감이 뒤따르게 된다. 외관상 빼어난 공식기록을 갖고도 정작 연봉책정에 있어서는 큰 배려를 받지 못하는 선수를 가끔 볼 수 있는데, 팀 공헌도나 팀워크의 문제 또는 향후 성장가능성 등 평가자의 주관적 판단이 표면성적 외로 고려되었기 때문으로 넓게 보면 이 모두가 광의의 고과 범주에 포함된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고 보면 공식기록이나 고과기록이나 숫자로 드러나는 포장지 기록이 다가 아니라 안으로 다분히 기록원의 주관적인 생각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기록원들의 어려운 점은 공식과 고과기록을 막론하고 바로 이 주관적 생각을  어떻게 조율하고 관리하느냐 하는 부분이다.
주관적인 판단과 결정에 있어 베테랑 기록원들의 풍부한 경기경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재산이지만 고과기록이 아닌 공식기록에서는 간혹 그 경험이 무리한(?) 해석을 낳는 경우도 있다. 다시 말하면 제3자의 눈으로 경기를 바라보지 않고 기록원이 경기에 감정이입을 싣는 경우가 생겨난다는 말이다. 선수출신 기록원이 흔히 범하기 쉬운 오류의 출발점도 바로 이 부분이다.
흔한 예는 수비수가 타구 수비실책을 저질렀을 경우, ‘프로라면 저 정도는 처리해줘야 하는데…’ 라는 생각이 들 때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록원의 눈은 사관으로서의 눈이 아니라 포도대장의 눈으로 둔갑을 한다. 그러다 보면 무리한 판정이 나오고 결과적으로 기록원의 실수로 연결된다.  
“안타를 너무 후하게 주는 것 같은데, 좀더 짜져야 하는 것 아닌가요?”
간혹 안타답지 않은 타구에 대해 안타 판정이 내려지면 약방의 감초처럼 따라 붙는 질문이다.
그러한 지적이 맞을 때도 상당수 있다. 애매한 상황에서 기록원은 확신없는 판정으로 선수에게 불이익이 돌아가는 것을 가장 크게 염려하고 두려워한다. 타구판정에 투수의 자책점도 걸림돌이 되지만 어쨌든 주는 타자이기 때문에 장고에 들어가면 대게 70% 이상 안타로 결론이 난다.
게다가 판정에 있어 공식기록원들의 주관은 현실적, 규칙적으로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 실책을 주고 싶어도 규칙상 그러지 못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여기에 ‘만일’ 이라는 가정법도 써먹을 수가 없다. 지적대로 후할 수 있지만 좀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후해보이는 것이다.
공식기록은 야수가 처리할 수 있는 타구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데 있어 눈에 보이는 사실적인 현상만을 가지고 판정을 내린다.  선수들끼리 사전에 사인을 어떻게 맞추었건 공식기록은 관심이 없다.
전진수비 중인 내야수가 정상적인 자기 자리에 있었다면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타구였다 하더라도 현재 서 있는 위치를 기준으로 대처가 어려웠다면 실책이 아니라 안타가 된다. 수비 중계플레이 때 외야로 누가 쫓아나가 공을 전달 받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하더라도, 그 내야수가 공을 받으러 나가지 않아 외야의 송구가 이상하게 흘렀다면 실책은 외야수에게 기록된다.
또한 1루수 앞 땅볼 때 투수가 방심해 1루 베이스 커버를 들어가지 않아 타자주자를 살려줘도 투수에게 실책을 기록할 수 없다. 이는 규칙에 의해 실책을 주고 싶어도 줄 수 없는 대표적이고도 단적인 예다. 당연 고과기록에선 투수의 수비미스로 체크가 된다.
2005년 7월 26일 광주에서 KIA를 상대로 9회 1사까지 노히트노런 기록을 끌어가던 롯데 장원준이 이종범의 1루수 앞 강습 땅볼 때 안타라는 직감에 묶여 빠른 1루 베이스 커버를 들어가지 못해 타자주자를 살려 대기록이 무산 되었던 일이 있다.
고과기록에선 장원준의 명백한 수비과실이다. 그러나 공식기록은 장원준의 실책이 아닌 이종범의 내야안타로 처리되었다. 
규칙에 송구나 포구 또는 태그 중의 미스플레이가 아닌 느린 수비동작이나 판단착오에 대해서는 실책으로 기록하지 말도록 못을 박아놓았기 때문이다. 유사한 상황에서 대대로 이 규칙이 적용되어 왔고 지금은 야구정서상 늦은 베이스커버는 모두가 실책이 아닌 안타로 인식되고 있다. 
같은 야구기록이라 대동소이할 것 같지만 공식기록과 고과기록은 이처럼 같은 상황을 두고도 정반대의 해석이 내려지는 경우가 생겨난다.
머리 복잡한 얘기라 쉬어가는 차원에서 타구와 실책에 관한 내용은 이쯤에서 접고 다음 번에는 구원승 결정에서 저지르기 쉬운 실수를 가지고 공식기록과 고과기록의 차이를 풀어보도록 하겠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
<사진>이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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