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사 주자 2루에서 유격수 내야안타. 2루 주자는 3루에서 멈춰서지 않고 그대로 홈까지 쇄도해 세이프되며 추격권에서 벗어나는 득점을 올렸다. '잃을 것 없이' 빠르게 달리던 근성있는 주루가 다시 나온 장면이다. 잠자고 있던 '2000년대 말 발야구 원조' 두산 베어스의 근성을 정수빈(22)의 과감한 플레이가 깨웠다.
정수빈은 지난 18일 잠실 삼성전서 9번 타자 우익수로 선발 출장해 4타수 2안타 2득점을 기록하며 팀의 4-3 신승에 보탬이 되었다. 특히 정수빈의 수훈이 가장 빛난 순간은 바로 6회말 2사 2루서 이종욱의 유격수 내야안타 때였다.
4,5회 각각 최재훈의 선제 결승타와 김현수의 우전 적시타로 2-0을 만든 뒤 6회 고영민의 좌월 솔로포까지 터지며 3-0으로 앞선 두산. 고영민의 뒤를 이은 정수빈은 볼카운트 2-2에서 상대 선발 윤성환의 공을 공략해 우중간 2루타로 연결했다. 2아웃에서 찬스를 살려낸 정수빈의 타격이었다.

다급해진 삼성은 윤성환을 내리고 좌완 권혁을 투입했다. 권혁을 상대로 파울 커트 3회를 기록한 이종욱은 유격수 쪽으로 깊은 타구를 때려냈다. 2아웃이었던 만큼 정수빈은 런 앤 히트로 그대로 달렸고 유격수 김상수는 타자주자만 아웃시켜도 되는 만큼 그대로 1루로 던졌다.
2아웃 상태와 발 빠른 타자주자 이종욱의 내야 깊은 타구. 그만큼 삼성 내야진은 이종욱의 세이프-아웃 여부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2루에 있던 정수빈은 3루를 향해 뛰는 것이 당연했으나 여타 상황보다 빠르게 달려나갔다. 타자주자 이종욱이 워낙 빠른 만큼 유격수 김상수가 타구를 잡기는 했어도 내야안타 가능성도 높았기 때문이다. 정수빈은 유격수 김상수가 자신에게 초점을 맞출 선택지를 지우고 3루를 지나 그대로 홈으로 달려들었다.
결과는 대성공. 이종욱이 1루에서 세이프될 때 1루수 채태인은 그저 송구를 받는 데 집중할 뿐이었다. 또한 정수빈은 3루를 지나 그대로 홈으로 달려드는 가속도가 있던 만큼 그대로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려 선 채로 홈을 밟았다. 다음 누상으로 뛰는 것이 당연한 상황에서 김민호 주루코치도 정수빈이 속도를 훨씬 높여 과감하게 홈 쇄도하길 바랐고 이는 내야안타에 2루 주자 득점이라는 흔치 않은 장면으로 이어졌다.
경기 후 김진욱 감독은 "올해 들어 최고로 두산다운 야구를 보여준 경기였다"라며 "6회 2사 후 고영민의 홈런은 큰 의미가 있었고 그 이후 정수빈의 과감한 베이스러닝 등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룬 경기다"라며 선수들을 극찬했다. '두산다운 야구'. 이는 2000년대 말 이종욱-고영민-민병헌(경찰청)-오재원 등 팀 내 '육상부'로 꼽히던 발 빠른 주자들이 상대의 빈 틈을 타 한 베이스 더 가는 과감한 주루를 펼치던 모습도 함께 내포하고 있다.
단순히 도루 수만 많은 것이 아니라 두산 준족들은 빠른 상황 판단에 이어 허를 찌르는 주루 플레이로 상대 수비를 당황하게 했다. 웬만한 우전안타가 나오면 1,3루 상황을 만들었고 과감한 슬라이딩으로 아웃 타이밍에서 살아나는 모습도 자주 보여주었다. 그러나 발 빠른 선수들의 잇단 부상이 이어지며 한 베이스 더 가는 주루가 대폭 줄어들기 시작했다. 부상으로 인해 두려움이라는 단어가 뇌리에 새겨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서커스 도중 불쇼를 하다가 크게 데인 단원에게 더 강력한 불쇼를 강요하기는 힘든 일. 그러나 두산은 기존 준족 선수들 외에도 발 빠른 주자들이 많은 편이라 대체자를 찾을 수 있는 환경은 확실히 갖춰져 있다. 경기 경험을 확실히 쌓고 있는 정수빈은 물론 지난해 2군 리그 도루왕(39도루) 허경민도 있으며 2010년 24홈런 거포로 알려진 이성열도 팀 내 200m를 뛰면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빠른 발을 갖고 있다.
역시 거포 유망주로서 현재 2군에 있는 김재환도 포수 출신이지만 30m를 3.8초에 주파하는 등 의외로 발이 빠른 야수다. 아직 타격이나 세기에서 아쉬움을 비춰 2군에 있는 신고선수 이현민은 400m를 47초대에 주파하는 '육상선수급' 쾌준족이며 김동길, 김동한, 정진호, 신동규 등도 단독 도루 능력을 갖춘 선수들이다. 김 감독이 취임 당시부터 표방한 '장점 특화 무한 경쟁 체제'에서 상황 판단 능력을 갖춘 주자들이 늘어난다면 과감한 베이스러닝 카드는 더욱 많아진다.
"대주자로 1군 26인 엔트리에 들더라도 경기 막판 승리 기운을 끌어올 수 있는 선수도 장점 특화에 성공한다면 적극 중용하겠다"라며 전체적인 베이스러닝 능력 부활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김 감독. 2루 주자 정수빈의 내야안타 홈 쇄도는 2000년대 말 '발야구팀' 두산의 근성을 다시 깨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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