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타만 많이 치면 결국 상대 전진 시프트에 걸릴 수 있잖아요. 타구 비거리를 늘려야지요”.
수비, 주루 면에서는 스스로도 어느 정도 수준에 올랐다는 자부심. 그러나 타격 면에서 확실한 모습을 기대했다. 두산 베어스 외야의 현재이자 미래 정수빈(23)이 내년 인천 아시안게임 대표팀 승선과 함께 아오키 노리치카(밀워키)처럼 심심치 않게 장타를 때려내는 중거리 타자로의 발전을 꿈꾸고 있다.
정수빈은 지난해 101경기 2할3푼5리 32타점 24도루의 성적을 올렸다. 2011년 2할8푼5리의 타율에서 5푼이나 급락하며 정확성에서 아쉬움을 비췄으나 도루 성공률 80%의 A급 주자로 성장했고 안타성 타구를 역동적인 다이빙 캐치로 잡아내고 빨랫줄 같은 송구로 상대 주자를 아웃시키는 호수비를 보여주며 주전 우익수로 활약했다.

그러나 7월 하순 레다메스 리즈(LG)의 몸쪽 공에 왼 종아리 부상을 당한 데 이어 시즌 막판이던 9월 30일 잠실 LG전에서는 유원상의 몸쪽 공을 커트하다 타구에 안면을 강타당하는 불운으로 안와벽 골절상을 입으며 시즌을 그대로 접었다. 국내 최고급 외야 수비력을 인정받게 된 한 해였으나 잇단 부상과 낮은 타율로 아쉬움도 많았던 지난 시즌이었다.
팀의 준플레이오프 패퇴를 병상에서 지켜보며 쓰린 속을 스스로 달래야 했던 정수빈은 올 시즌 업그레이드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훈련에 열중하고 있다. 비시즌에는 불우 청소년 돕기에도 힘을 쏟으며 한가하지 않은 스토브리그를 보냈던 정수빈은 “이제는 몸이 완전 괜찮다”라며 부상의 아픔을 잊은 듯 환하게 웃었다.
“부상 때문에 포스트시즌을 못 뛰었던 것이 너무 아쉬웠어요. 병원에 누워있으면서 바로 다음 시즌을 제대로 준비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우익수 자리는 경쟁이 치열하잖아요. 임재철 선배도 계시고 (민)병헌이 형, (박)건우. 여기에 (김)인태도 있고. 내색은 안 하려고 해도 속으로 몰래 열심히 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데뷔 첫 3년 간 정수빈의 통산 타율은 2할8푼6리. 나이와 성장세를 감안했을 때 지난해 풀타임 3할 타율도 노려볼 법 했던 정수빈이었으나 타율은 급전직하했다. “이제는 수비, 주루에 있어서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왔다고 생각한다”라고 자신한 정수빈이었으나 타격에 대해서는 스스로도 안타까운 점이 많았던 모양이다.

“수비와 주루는 제 스스로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왔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타격이 뒷받침된다면 어느 선수도 부럽지 않을 것 같은데. 시즌 초반 기습 번트로 안타가 많아지고 타격이 마음대로 안 되다보니 어느 순간 번트 동작을 자주 취하게 되더라고요”.
이제 프로 5년차에 접어든 정수빈. 1군에서의 경험을 웬만큼 쌓은 만큼 이제는 더 나은 발전을 위한 터닝포인트를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이야기했다. 그와 함께 현재 정수빈은 일본인 메이저리거 아오키 노리치카의 타격 모습을 주시하며 장점을 습득하고자 노력 중이다. 2011년까지 야쿠르트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일본 통산 3할2푼9리의 맹타를 자랑했던 아오키는 포스팅시스템을 통해 지난해 밀워키에 입단, 151경기 2할8푼8리 10홈런 50타점 30도루로 성공적인 메이저리그 데뷔 시즌을 치렀다.
“비시즌 동안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는데 아오키의 타격이 최고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동영상을 매일 보고 제 타격폼과의 차이점도 찾아보면서 ‘이 상황에서 아오키는 어떤 마음으로 쳤을까’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아오키의 폼에서 배워야 할 부분은 최대한 배우려고 노력 중입니다”.
사실 국내에서도 컨택 능력이 좋은 타자나 만개하지 못한 유망주들 중 아오키를 롤모델로 삼는 타자들도 많다. 이용규(KIA)가 가장 선호하는 스타일의 타자 중 한 명이 바로 아오키이며 정수빈의 팀 선배인 최주환도 상무 시절 아오키의 타격폼을 따라해보기도 했다. 아오키 본인이 타격폼을 하나로 정형화하지는 않았으나 대체로 공통된 것은 저중심으로 안정적이고 스윙이 상체에서 붙어 나오는 편이라 빠른 배트스피드로 이어진다.
다만 아오키의 경우는 2007년 20홈런을 때려내는 등 장타력도 심심치 않게 과시하는 중장거리 스타일의 타자다. 반면 정수빈의 프로 통산 4년 간 홈런은 불과 5개. ‘중장거리 타자 아오키를 롤모델로 삼은 것은 배팅 파워를 높이기 위한 전략인가’라는 질문에 정수빈은 부정하지 않았다. 발전하기 위한 시도 조차 없다면 결국 상대의 수비 전략을 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요즘 야구는 단타만 양산한다고 해서 능사는 아닌 것 같아요. 결국 상대에서 수비 시프트를 전진배치하면 걸릴 수 있으니까요. 중장거리 타자를 지향한다면 그래도 안타 확률이 더 높아질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올 시즌이 그 터닝포인트일 듯 싶어요. 물론 인위적으로 장타를 늘리겠다는 것보다는 히팅 포인트 수정, 임팩트 순간 손목을 쓰는 기술 등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와 함께 정수빈은 황병일 신임 수석코치와 논의한 뒤 방망이를 잡는 법을 바꿨다고 밝혔다. 이전에는 양 손 엄지를 제외한 8개의 손가락이 손잡이 동일선상에 놓이는 그립이었다면 이제는 왼 손목을 좀 더 안쪽으로 돌려 스윙을 붙여 나오게 하는 방법이다. 스윙 시 방망이가 수평으로 늘어져 나오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배트를 세우고 매섭게 휘두르며 배트 스피드를 높이는 전략이다.
“어떻게 보면 사소한 한 가지일 수 있는데요. 방망이를 잡을 때 왼 손목을 약간 안쪽으로 더 돌리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손가락을 동일선상에 뒀을 때 배트가 처지는 감이 있었는데 지금은 미리 어깨가 안 열리고 배트가 처지지 않게 나올 수 있도록 훈련하고 있어요”.
2년 전부터 정수빈은 아시안게임 대표팀 승선에 대한 꿈을 꾸고 있다. 2008 캐나다 청소년 야구 선수권 우승 주역 중 한 명인 정수빈은 아직 데뷔 후 주력 대표팀에 승선하지 못했다. 더욱이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은 금메달 병역 특례가 달려있다. 나이 대비 우월한 경력과 수비-주루 능력을 갖춘 정수빈 입장에서 간절한 태극마크가 아닐 수 없다.
“타격만 된다면 저도 아시안게임 무대를 밟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이번 전지훈련에서도 타격 보완에 집중한 훈련을 생각하고 있고요. 수비와 주루에서 어느 정도 발전했다는 생각이 드는 만큼 타격이 된다면 노려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뽑히고 싶지요”.
지난 3년 중 2010~2011년 벽두 정수빈에게 시즌 목표를 물어보면 타율-타점-도루 중 적어도 두 가지는 달성해왔다. 그러나 올 시즌에는 부상으로 인해 목표 달성에 실패한 정수빈이다. “점차 나아지는 성적에 욕심을 부리다보니 지난해 더 안 되었던 것 같다”라며 개인 성적 목표는 없음을 밝힌 정수빈은 대신 건강한 한 해가 되길 기대했다.
“개인 목표는 솔직히 없어요. 그동안 목표를 상향 조정하고 그 수치를 이루려다보니 욕심을 내다가 지난 시즌에는 더 안 되었던 것 같아요. 지난해 두 번 다쳐서 뛰고 싶을 때 못 뛰었잖아요. 이번에는 안 다치고 풀타임 시즌을 치르고 싶습니다”. 정수빈은 다시 한 번 우익수 주전 경쟁의 파도 앞에 당당히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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