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고경표를 세상에 알린 것은 tvN 예능프로그램 ‘SNL코리아’였다. 이 프로그램에서 고경표는 잘생기고 젊은 남자 배우답지 않게 ‘19금 병맛 코미디’를 능청스럽게 소화하며 눈길을 끌었다. 말쑥한 꽃미남이 멋진 모습으로 허세를 잡기보다는 망가짐을 자처, 게이부터 모범생, 느끼남을 연기하며 웃음을 주는 모습이 시청자들에게는 꽤 신선함으로 다가왔던 듯하다.
그가 출연한 ‘SNL코리아’ 방송이 끝나는 날이면 “고경표가 누구냐?”, “몇살이냐”, “어디에 나왔었나” 등 배우 고경표에 대한 관심도 끓어올랐기 때문. 감사한 일이었지만, 가야할 길이 먼 이 젊은 배우에게는 분명 부담과 고민이 동시에 드는 시간이었다.
“‘SNL’을 그만둘 쯤에 좀 뭔가 생각이 많아졌어요. 만약 그만두고 다른 영화를 하거나 할 때 ‘SNL’적인 이미지가 너무 강해 다양한 모습을 보여 줘야하는 배우의 이미지에는 별로 좋지 않은 것 아닐까, 생각했거든요. 잠깐의 고민이었어요. 지금은 그 고민에서 답을 내렸거든요. 그런 코미디 연기는 저만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오히려 좋게 받아드리게 됐어요. 찡찡댄다고 바뀌지 않는 게 이미지니까요”

TV나 영화 속 캐릭터를 벗어나 실제 만난 고경표는 크고 깊은 두 눈을 굴리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진지한 남자였다.
“저는 그냥 되게 혼자 생각이 많아요. 생각을 하다 보면 고민들이 정리 될 때가 있고, 코믹한 이미지에 대해 고민할 때는 이런 저런 친구들이랑 얘기를 많이 하면서 ‘에이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내가 여기서 골머리 싸맨다고 달라질 것이 없다’고 결론을 지었죠. 참, 그런 말들이 좋았어요. ‘너만 할 수 있잖아’ 같은 말이요. 친구들이나 주변 분들이 ‘지금 20대 초반 남자배우들 중에 그런 걸 누구 시키겠어, 너밖에 없잖아?’이렇게 말해주실 때 ‘아 그게 나만 할 수 있는 거구나, 이게 나만의 색깔이구나. 이 색을 잘 간직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신의 색깔을 받아들이고 인정했기 때문일까. 그는 이번 영화 ‘무서운 이야기2’에서도 망가짐을 두려워하지 않고 ‘찌질남’에 완벽 빙의해 관객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4가지의 에피소드가 등장하는 옴니버스식의 영화에서 고경표는 가장 마지막 에피소드인 ‘탈출’의 주인공 고병신 역으로 등장한다. 고병신은 왕따 출신의 어눌한 교생 선생으로 교생 부임 첫날 학생들에게 망신을 당하고 자살을 시도하는 ‘찌질한’ 캐릭터다. '탈출'을 연출한 정범식 감독은 “시나리오를 쓰면서 고병신 역할을 할 배우가 좀처럼 생각나지 않았다. 짐 캐리 같은 코미디 연기가 가능하면서도 조셉 고든 레빗의 달콤함을 가지고 있는 배우가 필요했다. 고경표를 알게 되면서 코믹 호러라는 콘셉트가 완성됐다"고 밝힌 바 있다.
“망가지는 거에 대해서는 고민을 잘 안 해요. 코믹한 요소 뿐 아니라, 망가지는 캐릭터를 가지고 상대적으로 저를 낮추는 것에 대해 기분이 나쁘다거나, 그렇지는 않아요. 그렇다고 저를 그냥 가볍게만 보는 건 싫은데요, 신기한 게 제가 그렇게 코미디 연기를 하면 가볍게 말하는 분이 있을 법도 한데 요즘은 시청자 분들의 눈이 높아지셔서 그런지 그냥 연기를 잘했다고 말씀해주세요. 너무 감사하죠”
‘탈출’에서 고경표는 과감한 노출연기를 시도했다. 도입부에 등장하는 엉덩이 노출신이 그것. 그는 기자간담회나 방송 등에서 엉덩이 연기에 대해 “부담이 전혀 없었다. 100% 내 엉덩이”라고 공공연히 밝힌 바 있다. 사실 시나리오에는 이 엉덩이 노출 신이 없었다. 먼저 하겠다고 자처한 건 고경표였다.
“그 신이 원래 없었는데 제가 옥상 올라가기까지 감정을 생각했을 때 그 정도 창피함은 당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감독님도 은근히 바라는 눈치시고요.(웃음) 저는 그런 것에 대해 부담이 없어요. 오히려 할 때 확실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이죠. 어영부영해서 이도 저도 아닌 게 될 바에야, 이건 공포영화지만 ‘병맛 코미디’와 웃긴 요소가 많은 작품이니 작정하고 나갔어요. 좀 아쉬운 건, 그게 제 엉덩이가 아닐 거라 생각하실 것 같아요. 얼굴이 확실하게 안 나와서요. 제 엉덩이가 확실하게 맞습니다”

원래 고경표의 꿈은 개그맨이었다. 그는 과거 MBC ‘무한도전’을 빼놓지 않고 챙겨볼 정도로 팬이었고, 그 때문에 개그맨을 꿈꿨단다. 연예인이 된 후 시상식에서 ‘무한도전’ 멤버들을 만나 행복했다. 특히 유재석이 이제 막 데뷔한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 준 것이 너무 좋았다고 했다. 연기를 접하게 된 계기 역시 개그를 위해서였다. 개그맨이라는 직업 또한 희극이 베이스라는 생각 하에 시험 삼아 연기를 시작하게 된 것. 그러나 이후 연기의 매력에 빠져 버렸고 지금까지 왔다. 개그맨을 꿈꿨던 고경표 만의 코믹 연기 비결은 뭘까.
“웃긴 걸 많이 봐야죠. 예능을 많이 봐요. 또 웃긴 연기 하는 걸 많이 봐야 하는 것 같아요. ‘SNL코리아’를 많이 봐요. 신동엽 선배님이 많이 가르쳐 주셨어요. 연기의 시작은 보고 따라하는 것인 것 같아요. 어떤 배우가 어떤 감정을 표현할 때 어떤 표정을 짓는지 보고 따라해 보는 거죠. TV를 달고 살았던 것 같아요. 따라 하다보면 거기에 자기만의 감정이 입혀지고 하면 멋진 것 같아요”
코미디 연기에 대한 애정이 이렇게나 큰데, 다시 'SNL코리아'에 출연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시청자들의 입장에서는 궁금하기도 한 문제다.
"기회가 된다면 하고 싶어요. 다시 돌아가서 하고 싶어요. 재미있었어요. 지금 나오시는 분들이 다 제가 좋아하는 분들이에요. 재범이 형도 그렇고 같이 했으면 더 좋았을 걸 아쉬움이 있어요"
eujenej@osen.co.kr
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