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농구가 원래 이렇게 인기가 많아요?”
KGC 주장 양희종(33, KGC)도 일본농구 열기에 깜짝 놀랐다. 일본프로농구의 질적 성장과 양적 팽창이 실로 놀라운 수준이다.
안양 KGC인삼공사는 14일 오후 6시 일본 도쿄 요요기 제1체육관에서 벌어진 ‘제 1회 동아시아 클럽 챔피언십’에서 일본프로농구 B리그 가와사키 브레이브 선더스와 접전 끝에 80-83으로 아쉽게 졌다. 승패보다 중요한 것은 일본프로농구의 성장을 국내 관계자들이 직접 확인했다는 점이다.

이날 약 1만 명을 수용하는 요요기 체육관에 6천 여 명의 팬들이 몰렸다. 모두 만 원 정도하는 입장권을 구매한 유료관중이었다. 농구가 철저한 비인기 종목으로 분류됐던 과거와 비교하면 일본농구의 놀라운 약진이다. 프로농구가 돈이 되는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이란 인식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기존 NBL과 BJ리그를 통합한 일본프로농구 B리그는 올 시즌 출범 첫 해를 맞았다. 반면 한국프로농구(KBL)은 출범 20년을 맞은 큰 형님뻘이다. 실력이나 마케팅 등 모든 면에서 형이 아우보다 나아야 정상인 상황. 하지만 현장에서 지켜본 일본농구는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마케팅이 체계적이고, 성장목표가 뚜렷한 일본프로농구는 인기종목으로 도약하기 위한 준비를 모두 마쳤다.

▲ 경기시작 한 시간 전부터 줄을 선 팬들
기자는 지난해 5월 NBL 결승전을 취재했다. 도쿄 외곽에서 3천 명 정도를 수용하는 작은 체육관에서 경기가 치러졌다. 지역연고제가 제대로 정착되지 못해 경기장을 옮겨가며 대회를 치렀다. 아무래도 전체적인 열기가 KBL 챔프전보다 떨어졌다. 그럼에도 최고 5만 원이 넘는 입장권을 구매해 경기를 관람하는 일본 팬들의 성숙한 태도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충격적인 것은 그날 일본지상파방송 스포츠뉴스에서 농구결승전 소식이 아예 다뤄지지 않았다는 사실. 그만큼 프로농구가 일본 내에서 철저히 소외받는 비인기종목이란 반증이었다.
일 년 만에 사정은 달라졌다. B리그는 무려 1천 억 원에 달하는 소프트뱅크 등 대기업 스폰서들의 막강한 지원을 등에 업고 대대적인 홍보와 마케팅에 나섰다. 농구흥행을 위해 농구드라마 제작까지 지원할 정도다. 일본은 NBA 등 선진리그의 마케팅 기법과 기술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원래 스포츠를 좋아하는 일본 사람들이다. 제대로 불꽃만 튀겨준다면 농구가 인기스포츠로 도약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엿보인다.
최근 KBL의 줄어든 팬들을 보면서 한 농구원로는 “농구대잔치 때는 엄동설한에도 팬들이 줄을 섰는데...”라고 한탄했다. 일본에서는 지금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동아시아 클럽 챔피언십을 앞두고 입장시간 한 시간 전부터 팬들이 줄을 섰다. 온라인 판매분 3천석이 모두 매진돼 현장에서 표를 구해 입장하려는 관객들이었다. 어림잡아도 2천 명은 되는 숫자였다. 이날 도쿄는 눈이 오고 바람이 세게 불어 추운 날씨였다. 어차피 입장시간이 한 시간 이상 남았기에 다른 곳에서 시간을 보내다 와도 충분했다. 하지만 먼저 좋은 자리에 앉길 원하는 팬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한 시간을 기다렸다.

가와사키 팬이라는 20대 여성 시모다 씨(사진 오른쪽)와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가와사키를 좋아해서 매주 농구장을 찾는다. 올스타전야제를 보기 위해 왔다. 추운 곳에서 한 시간 정도 기다렸지만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다. 오늘은 한국 팀이 이길 것 같다”면서 웃었다.
▲ 고가의 라이센스 제품도 불티나게 팔려
B리그 물품을 파는 야외 공식스토어에도 많은 팬들이 찾아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반팔티셔츠, 후드티, 유니폼, 모자, 응원수건, 배지, 가방 등 종류가 매우 다양했다. 반팔티셔츠 한 장에 4만 원 정도니 싼 가격은 아니었다. 그런데 제품 디자인과 질이 좋아 구매가치가 충분했다. 특정 물건의 경우 한정판으로 소량 제작해 희소가치를 높였다. 추운 날씨에도 팬들이 줄까지 서가면서 물건을 구매하려는 이유였다.
아직도 DVD 및 CD 대여사업이 활기를 띠는 일본이다. 듣고 싶은 노래는 돈을 주고 사서 듣는 것이 당연한 민족이다. 경기도 마찬가지였다. 고가의 경기라도 재미가 있다면 티켓구매를 주저하지 않는다. 여기에 1억 3천 만 명이라는 큰 내수시장이 있다. 일본이 경제대국인 이유다.
KBL의 경우 라이센스 제품 판매에 대한 실적이 매우 부진한 편이다. NBA 등 해외리그와 비교하면 팬들의 브랜드 충성도나 인지도가 매우 떨어진다. 제품의 디자인이나 품질도 팬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로고만 붙여도 불티나게 팔리는 NBA 관련 제품과 대조적이다.

B리그는 올 시즌 출범했다. 하지만 관계자들은 라이센스 마케팅에 대한 노하우가 풍부하다. 일본프로야구(NPB), 일본프로축구(J리그) 등을 성공적으로 운영해본 실무자들이 B리그에 포진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어떻게 물건을 만들어야 팬들에게 어필해 잘 팔릴 수 있는지에 대한 확실한 감각이 있다. 똑같은 공식을 농구에 대입하니 문제가 술술 풀릴 수밖에 없다.
기자가 10년 넘게 KBL 현장을 취재했지만 올스타전 한정판 유니폼을 판매한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수요가 적어 생산이 어렵다’, ‘제작해도 몇 명이나 사겠느냐’는 소리만 들었다. 출범 20주년을 맞은 KBL이 팬들이 갖고 싶어 하는 유니폼 하나 만들지 못했다는 것은 문제가 크다. 팬들이 지갑을 열지 않는다면 열도록 만드는 것이 그들이 할 일이 아닌가.
▲ NBA 못지않았던 요요기 체육관 시설
김영기 KBL 총재는 양국 관계자들이 모인 자리서 “53년 전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내가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바로 이 요요기 경기장에서 뛰었다. 내가 당시 득점 2위를 했다”며 일화를 소개했다. 기자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김 총재의 영웅담 때문이 아니다. 개장한 지 53년이 됐다는 경기장이 최신식 NBA 경기장과 비교해도 손색없을 정도의 큰 규모와 좋은 시설을 자랑했기 때문이다.
‘일본농구의 심장’으로 불리는 국립요요기 제1경기장은 1만 3291명을 수용할 수 있다. 뮌헨올림픽스타디움을 본 따 만든 두 개의 웅장한 기둥이 상징이다. 내부도 훌륭했다. 공간이 워낙 넓어 팬들이 편안하게 경기관람이 가능하다. 1등석의 경우 컵홀더까지 갖춘 고급의자를 배치했다. 중계방송장비 등도 무리 없이 설치할 수 있다. 코트와 좌석은 블랙&화이트로 멋을 냈다. 2015 NBA 올스타전야제를 취재했던 브루클린 네츠의 홈구장 바클레이스 센터를 연상시켰다.

백미는 조명과 대형스크린이었다. NBA처럼 관중석을 다소 어둡게 하고 빛을 코트에 집중시켰다. 코트를 마치 콘서트에서처럼 주목하며 볼 수 있도록 했다. 조명이 워낙 좋다보니 아무렇게나 찍어도 화보가 됐다. 똑같은 KBL 선수들인데 사진은 NBA 공식사진 못지 않게 잘나왔다.
천장에는 HD전광판이 각종 정보를 제공했다. TV 광고를 상영하는 등 스크린은 상업적인 용도로도 활용가치가 매우 높았다. KBL 10개 구단 중 이런 시설을 갖춘 체육관을 홈구장으로 활용하는 팀은 없다.
이성훈 KBL 사무총장은 “스크린과 음향장비를 떼서 고스란히 한국에 가져오고 싶다”며 부러움을 표했다. 국내구장의 경우 천장이 약해 안정성 문제로 대형 스크린을 설치할 수 없는 곳이 많다. 53년 된 일본구장에서도 할 수 있는 것을 우리는 못하고 있다. 기술이 없는 것은 아니다. NBA 경기장 등에 사용되는 풀HD 패널을 제작하는 국내기업도 있다.

▲ KBL, 뒤처지지 않으려면 분발해야
김영기 KBL 총재는 “KBL이 20년 전에 출범했다. 우리도 올스타전을 일주일 뒤에 부산에서 개최한다. B리그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경기력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 발전할 것이다. 이웃나라 B리그가 성공해서 우리도 많이 배우고 함께 발전하길 바란다. 한국과 일본이 단일시장으로 같이 경기하는 날이 오길 바란다”고 축사를 했다.
이어진 자리서 오오카와 마사아키 B리그 총재는 "올스타전 티켓은 매진됐다. 한일전은 5천 명 이상이 들어온다. 프로모션을 잘했던 효과가 나오고 있다. 선수들이 기대감을 갖고 열심히 해주고 있다. 모든 (흥행)효과들이 빠른 도약에 요인"이라고 밝혔다. 일본 올스타전의 티켓가격은 훨씬 더 비싸다. 만 석을 다 팔았다는 말에 한국 관계자들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김 총재의 발언에서 KBL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나왔다. 하지만 브랜딩이나 티켓판매 등 마케팅적인 측면에서 형님 KBL이 B리그에 사실 크게 내세울 것이 없었다. 출발은 늦었지만 B리그가 KBL보다 비즈니스를 더 잘하고 있다.

과연 일주일 뒤 치러지는 부산 올스타전에서 몇 명의 관중이 들어찰까. 그 중 유료관중의 비율은 얼마나 될까. KBL은 팬들이 진정 원하는 수준 높은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걸그룹만 부른다고 저절로 흥행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일본농구의 약진을 현장에서 본 KBL이 진지하게 고민해볼 시점이 아닐까. / jasonseo34@osen.co.kr
[사진] 도쿄(일본)=서정환 기자 jasonseo34@osen.co.kr / 사익스 사진은 한명석 기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