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은 이런 대우를 받아선 안 된다."
토트넘 홋스퍼 팬들이 10년을 헌신한 '캡틴' 손흥민(33)을 향해 욕설을 날렸다.
토트넘은 19일 오후 11시(한국시간) 영국 에버튼 구디슨 파크에서 열린 2024-2025시즌 프리미어리그(PL) 22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에버튼에 2-3으로 패했다.
이로써 토트넘은 리그 6경기째(1무 5패) 승리를 신고하지 못하며 심각한 부진을 이어갔다. 순위는 어느덧 리그 15위. 토트넘은 22경기에서 승점 24점(7승 3무 12패)을 벌어들이는 데 그쳤다. 한 경기 덜 치른 16위 에버튼(승점 20)과 4점 차밖에 나지 않기에 여기서 더 추락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이제는 생존 걱정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된 토트넘이다. 10위 풀럼(승점 33)보다 18위 입스위치 타운(승점 16)과 격차가 더 적다. 하루빨리 반등하지 못하면 충격적인 강등 싸움이 현실로 다가올 수 있다. 최근 리그 10경기에서 단 1승밖에 없는 최악의 흐름을 깨야 한다.
이날 토트넘은 선수들의 부상 공백으로 깜짝 3-4-3 포메이션을 꺼내 들었다. 제임스 매디슨-손흥민-데얀 쿨루셉스키, 제드 스펜스-루카스 베리발-파페 사르-페드로 포로, 벤 데이비스-라두 드라구신-아치 그레이, 안토닌 킨스키가 선발로 나섰다. 도미닉 솔란케가 부상으로 빠지면서 손흥민이 중앙 스트라이커 역할을 맡았다.

결과는 최악이었다. 토트넘은 전반에만 내리 3실점하며 와르르 무너졌다. 전반 12분 도미닉 칼버트르윈이 박스 안에서 이드리사 게예의 전진 패스를 받았다. 칼버트르윈은 개인기로 토트넘 수비를 따돌린 뒤 오른발 슈팅으로 선제골을 터트렸다.
에버튼이 추가골을 뽑아냈다. 전반 28분 일리만 은디아예가 중원부터 빠르게 전진하며 토트넘 수비를 파고 들었다. 그는 라두 드라구신마저 가볍게 따돌린 뒤 왼발 슈팅으로 골망을 가르며 2-0을 만들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토트넘은 자책골까지 기록하며 자멸했다. 전반 추가시간 에버튼의 코너킥 상황에서 칼버트르윈이 머리에 공을 맞혔다. 아치 그레이가 이를 걷어내려다가 자기 골문 안으로 밀어 넣고 말았다. 여기에 전반 막판 드라구신이 부상으로 쓰러지는 악재까지 겹쳤다.
후반에도 반전은 없었다. 토트넘은 후반 31분 데얀 쿨루셉스키의 센스 있는 만회골로 한 골 따라 붙었고, 후반 추가시간 히샬리송의 복귀골로 2-3까지 추격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토트넘은 더 이상 에버튼 골문을 열지 못했고, 경기는 에버튼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토트넘 팬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BBC'에 따르면 이날 토트넘 팬들은 경기장에 찾아온 다니엘 레비 회장에게 야유를 보냈고, 토트넘 선수들이 패스만 성공해도 비꼬듯이 과장된 환호를 보냈다. 게다가 기뻐하는 에버튼 팬들을 향해 "너네는 절대 특별하지 않아. 왜냐면 우리는 매주 지거든"이라고 외치기도 했다.
종료 휘슬이 불린 뒤 토트넘 팬들이 자리한 원정석에선 야유가 쏟아졌다. 그럼에도 손흥민은 주장답게 팬들에게 다가가 사과하며 격앙된 분위기를 가라앉히려 노력했다.
'토크 스포츠'의 크리스 코울린 기자는 "몇몇 토트넘 선수들은 원정석으로 다가가 팬들에게 인사하길 매우 꺼렸다. 손흥민은 매우 화가 났다"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손흥민은 이전에도 동료들이 화난 팬들 앞으로 가길 주저하자 호통 치며 데려간 적 있다.
하지만 돌아온 건 욕설이었다. 손흥민은 다른 선수들이 떠난 뒤에도 끝까지 홀로 남아 사과했지만, 토트넘 팬들은 "재수 없는 XX!"라는 구호를 반복할 뿐이었다. 결국 손흥민도 몇 차례 더 박수를 친 뒤 고개를 푹 숙이고 돌아갔다.


이를 본 언론인 미치 프레턴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토트넘 레전드를 대하는 끔찍한 방식이다. 그는 팀에 봉사했고, 우리와 함께 모든 쓰레기 같은 일을 겪어냈다. 두 배로 노력하고, 팀에 남았다. 맞다. 손흥민은 올 시즌 충분히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대우를 받아선 안 된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실제로 손흥민은 2015년 레버쿠젠을 떠나 토트넘에 합류한 뒤 한 번도 팀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팀이 암흑기에 빠졌던 2021년에도 장기 계약을 맺었다. 당시 손흥민은 다른 빅클럽과 이적설도 여럿 있었지만, 흔들리지 않고 4+1년 계약에 서명하며 충성심을 보여줬다.
이제 손흥민은 토트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선수다. 그는 토트넘 유니폼을 입고 통산 170골을 넣으면서 구단 역대 최다 득점 5위에 올라 있고, PL 최다 어시스트 기록(68개)도 보유 중이다. 여기에 에버튼전을 통해 435번째 경기에 출전하며 해리 케인과 함께 최다 출전 공동 10위로 올라섰다.
그럼에도 토트넘 팬들의 비난이 이어지는 상황. 한 토트넘 팬은 "보고 있으니 슬프다. 난 손흥민이 부진한 시즌을 보내고 있다는 불만에 찬성한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 대고 저렇게 말할 수는 없다. 우리에게 커리어 전부를 바친 사람에 대한 존중은 어디에 있는가?"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편 토트넘은 '닥터 토트넘'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부진에 시달리고 있는 팀들을 고쳐주는 명의라는 조롱이다. BBC는 "닥터 토트넘이 에버튼을 치료했다. 하지만 엔지 포스테코글루 감독에게는 강장제가 절실히 필요하다. 에버튼은 위기에 처해 있었지만, 닥터 토트넘과 포스테코글루의 치유의 손길 덕분에 병을 치료하고 활력을 되찾았다"라고 보도했다.
에버튼도 토트넘을 만나 6경기 무승과 20경기 15골에 불과했던 빈공을 치료하는 데 성공했다. 에버튼이 전반전에 3골을 넣은 건 지난 2017년 2월 본머스전 이후 무려 7년 350일 만의 일이다. 칼버트르윈도 토트넘 골망을 흔들며 지난해 9월 빌라전 이후 1288분 만에 득점포를 가동했다.
BBC는 "닥터 토트넘은 토트넘을 겨냥한 잔인한 최신 험담이다. 활력이 절실히 필요한 팀이나 감독이라면 북런던을 찾아 수술받아야 한다는 이론이다. 올 시즌 만족을 느낀 환자에는 크리스탈 팰리스와 입스위치 타운이 포함돼 있다. 두 팀 다 포스테코글루를 상대로 절실히 필요했던 첫 승리를 거뒀다"라고 전했다.
또한 매체는 "닥터 토트넘은 에버튼에 완벽한 처방전을 내놓으며 완전히 바꿔놨다. 에버튼은 슈팅 12개, 유효 슈팅 6개를 기록하며 토트넘을 찢어버렸다. 이번 시즌 무기력했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라며 "토트넘은 전반전 난장판인 경기력을 선보였고, 약을 받은 에버튼은 전반 3-0이라는 결과를 얻었다. 포스테코글루나 다른 누군가 막판에 터진 쿨루셉스키와 히샬리송의 골에 속아 근소한 승부였다고 생각하는 건 망상일 수 있다"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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