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이 없다는 변명도 사라졌다. 아시안컵이 1년 가까이 연기되면서 대한축구협회는 로베르트 모레노 임시 감독과의 동행을 재검토할 시간을 확보했다. 이제는 모레노 감독을 계속 믿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현재까지 보여준 경기력과 전술적 완성도를 고려하면 결별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선택이다.
스페인 매체 문도데포르티보는 5일(한국시간) 모레노 감독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홈구장을 방문해 이강인의 경기력을 직접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한국 대표팀 코칭스태프가 이강인의 최적 포지션과 활용 방안을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해외파 선수의 경기를 직접 확인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미 4차례 A매치를 치렀음에도 핵심 공격 자원인 이강인의 역할을 명확하게 정리하지 못했다는 점은 아쉽다. 이강인은 좁은 공간에서의 볼 소유와 정교한 패스, 창의적인 공격 전개 능력을 갖춘 선수다. 중요한 것은 측면과 중앙 중 어디에 배치하느냐가 아니라 그의 장점을 극대화할 전술적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손흥민과 이강인, 황인범 등 뛰어난 선수들을 보유하고도 이들의 능력을 하나의 조직으로 연결하지 못한다면 감독의 역량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성적도 확신을 주기에는 부족하다. 모레노 감독은 지난 9~10월 A매치 4경기에서 2승 1무 1패를 기록했다. 에콰도르를 상대로 3-0 완승을 거뒀지만 우루과이전 1-4 대패는 대표팀의 한계를 드러냈다. 상대의 압박에 수비 조직이 흔들렸고 공격 전개에서도 뚜렷한 해법을 찾지 못했다. 강팀에 패할 수는 있다. 그러나 패배의 과정에서도 팀이 추구하는 축구의 방향과 발전 가능성은 보여줘야 한다. 모레노 감독은 아직 그만한 믿음을 주지 못했다.
선수단 운영 역시 물음표가 남는다. 지난 10월 A매치 이후 김민재와 황인범, 황희찬 등 96라인의 은퇴설이 불거졌고 손흥민과의 불화 의혹까지 확산됐다. 물론 확인되지 않은 갈등설을 사실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다만 선수단 내부의 소통과 신뢰를 관리하는 것은 감독의 책임이다. 모레노 감독이 강조한 원팀의 가치는 기자회견이 아니라 경기장에서 조직력으로 증명돼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아시아축구연맹(AFC)은 당초 2027년 1월 개최할 예정이었던 아시안컵을 2027년 12월 23일부터 2028년 1월 21일까지로 연기했다. 기존 일정대로라면 모레노 감독의 계약이 11월 27일 종료된 뒤 대회까지 한 달 남짓한 시간밖에 없었다. 감독 교체가 쉽지 않았던 이유다. 그러나 이제는 새로운 사령탑을 선임하고 전술을 정착시킬 시간이 생겼다. 준비 기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임시 감독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논리는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특히 이번 아시안컵은 손흥민에게 마지막 도전이 될 가능성이 있다. 한국은 1960년 이후 아시아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대회가 연기되면서 손흥민은 만 35세에 우승에 도전해야 한다. 대한축구협회가 얻은 시간은 손흥민에게 결코 가볍지 않은 부담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확실한 전술과 조직력을 갖춘 대표팀을 만들어야 한다. 손흥민의 개인 능력에 의존하는 축구에서 벗어나 이강인의 창의성을 살리고, 김민재를 중심으로 수비를 안정시키는 것이 감독의 역할이다.
모레노 감독에게는 오는 13일 사우디아라비아, 17일 카타르와 평가전이 남아 있다. 대한축구협회는 총 6경기를 평가한 뒤 거취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남은 두 경기에서 승리한다고 그동안의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강인의 활용법과 수비 조직력, 상대 압박에 대한 대응 능력이 얼마나 개선됐는지 냉정하게 살펴야 한다.
현재까지 모레노 감독이 보여준 모습만으로는 계약 연장을 정당화하기 어렵다. 감독 교체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불확실한 전술과 경기력에 대표팀의 미래를 맡기는 것 역시 무책임하다. 대한축구협회는 이제 편한 선택이 아니라 한국 축구에 필요한 선택을 해야 한다.
아시안컵 연기로 시간을 벌었다. 그러나 시간이 생겼다고 경쟁력이 저절로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모레노 감독과 계속 함께해야 할 명확한 이유를 제시할 수 없다면 결론은 분명하다. 한국 축구의 새로운 출발을 위해 이제는 결별할 시간이다. / 10bird@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