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구 전 KBO 총재 특별기고] 스포츠의 본질을 되찾기 위한 체육인의 반성과 성찰을 촉구한다…체육계 문제 해결의 주체는 체육인이어야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26.09.15 09: 13

체육계가 자정 능력을 상실했다는 소리가 높다. 축구의 월드컵 후폭풍부터 배재고 야구부 파문까지, 일련의 사태와 관련한 체육계의 무기력은 급기야 정치권, 법적 문제로 비화했다. 정치권의 과도한 개입이나 부당한 간섭이라는 비판도 비등했지만, 체육계의 ‘자율적 해결’이 사라진 과정은 지켜보는 이들로 하여금 씁쓸한 소회를 자아냈다. 이 시점에서 유영구 전 KBO 전 총재가 ‘반성과 성찰’을 바탕으로 한 체육계의 과감한 개혁을 촉구하고 나섰다. 체육계 원로의 충정어린 글을 체육계는 귀담아듣고 실천에 나서야할 것이다.[편집자의 말]
최근 축구협회와 배재고 야구부 사태를 바라보며 체육인의 한 사람으로서 깊은 우려와 안타까움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특정 개인이나 특정 조직의 잘잘못을 따지는 데 그친다면, 우리는 또다시 문제의 본질을 놓치게 될 것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 체육계 전체가 그동안의 관행과 운영 실태를 냉정하고 철저하게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우리 체육(계)은 너무 오랫동안 오로지 승리와 성적이라는 결과를 모든 것의 기준으로 삼아오지 않았는가? 이기면 모든 과정이 용서되고, 좋은 성적을 거두면 그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까지도 묻혀버리는 풍토가 우리 체육계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선수의 인격과 권리, 지도자의 책임과 품격, 공정한 경쟁의 가치보다 성적표가 앞서는 현실을 체육인 스스로 외면하지 않았는지 깊이 반성해야 한다.
스포츠는 본질적으로 인간의 성장과 존엄을 위한 것이다. 승리는 소중하나 승리 만이 스포츠의 목적은 아니다. 정정당당하게 경쟁하고, 실패를 통해 배우며 패배의 아픔을 딛고 다시 일어서는 불굴의 정신을 기르는 것이야말로 스포츠가 인간에게 제공할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가치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이 소중한 가치를 뒤로한 채 ‘이기는 스포츠’에만 지나치게 매몰되었다.
지도자는 성적 압박에 시달리고, 선수는 승리를 위해 모든 것을 감내해야 했으며, 조직은 성과를 이유로 잘못된 관행을 합리화하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승리가 아니라 참여이며, 본질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잘 싸우는 것이다.
체육인 모두가 먼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과연 떳떳했는가?’
선수들에게 공정과 존중을 가르치면서 정작 우리 스스로는 그것을 지켜왔는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잘못을 인정하기보다 조직과 사람을 지키는 데 급급하지 않았는가? 이 질문 앞에서 우리 체육인은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서로를 향한 비난과 책임 전가가 아니라 체육인 스스로의 철저한 성찰이다.
잘못이 있다면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 잘못된 관행이 있었다면 과감히 끊어내야 한다. 그리고 또한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체육인 스스로 원칙과 기준을 확립해야 한다. 동시에 지금이야말로 체육계가 더욱 굳건하게 하나로 결집해야할 때다.
서로 다른 종목과 이해관계를 넘어 ‘스포츠의 본질을 회복한다’는 공동의 목표 아래 힘을 모아야한다. 내부의 잘못을 고치겠다는 의지가 없다면 단결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러나 뼈를 깎는 성찰을 바탕으로 한 단결이라면 체육계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체육계에 대한 외부의 비판과 지적을 무조건 간섭으로 치부해서도 안 된다. 국민의 우려와 언론의 비판, 정치권과 사회의 문제 제기에는 우리가 반드시 귀 기울여야할 부분이 있다.
아픈 지적일수록 겸허하게 경청하고,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신속하게 개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다만 비판을 수용하는 것과 체육계 문제의 해결을 외부의 힘에 맡기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외부의 지적은 체육계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 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체육(계)의 문제를 가장 잘 알고 해결해야 할 주체는 체육인 자신이어야 한다.
외부의 비판을 방어하기에 앞서 그 안에 담긴 진실을 외면하지 말고 찾아야 하며, 외부의 요구를 무조건 거부하기보다는 체육 발전에 도움이 되는 사항은 적극 수용해야 한다. 한편으론 정치적 이해관계와 외부의 힘에 의존해 자정을 포기하고 문제를 서둘러 봉합하는 것은 경계해야 마땅하다. 체육계가 스스로 해결해야 할 역량을 상실하는 순간, 또 다른 의존과 갈등이 시작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체육인에게 필요한 것은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를 살피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스포츠를 위한 진정 올바른 길인가’를 고민하는 일이다.
선수와 지도자, 경기단체와 체육행정가, 원로와 젊은 체육인이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잘못은 함께 바로 잡으며, 미래를 만들어가야 한다.
일련의 사태가 우리 체육계의 위기로만 기억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지난날의 잘못된 관행을 과감하게 청산하고 스포츠의 본질을 회복하는 새로운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승리보다 정정당당한 과정이 존중받고, 패배한 선수에게 다시 도전할 용기를 주며, 지도자는 성적뿐 아니라 선수의 인격과 미래에 책임을 지고, 조직은 권위보다 공정과 신뢰를 우선하는 체육계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체육인 들이 뼈를 깎는 각오로 성찰해야 한다. 그 성찰을 바탕으로 서로를 탓하기보다 다시 손을 맞잡아야 한다. 외부의 충고에는 귀를 기울이고, 잘못된 것을 과감히 개선하되, 체육의 미래를 바로 세우는 일만큼은 스스로의 책임과 역량으로 이루어내야 한다.
우리에게 지금 이 순간 필요한 것은 변명도, 남 탓도, 일시적인 봉합도 아니다. 철저한 성찰, 과감한 혁신, 그리고 체육인 모두의 단결이다. 이번 위기를 우리 체육(계)이 한 단계 더 성숙하는 계기로 만들 수 있을 지는 결국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
체육인 스스로 먼저 일어서야 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스포츠과 국민에게 꿈과 감동, 공정과 희망을 줄 수 있도록 새로운 길을 함께 열어야 한다.
글. 유영구 전 KBO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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