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생 배우 사미자가 자신이 기억하는 일제강점기 당시를 떠올렸다.
사미자는 최근 유튜브 채널에 '86년을 살아도 잊히지 않는 전쟁의 기억...'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공개했다.
1940년생인 사미자는 광복 당시 5살, 김관수는 8살이라고 밝혔다. 일제강점기 시절 초등학교 1학년이었다는 김관수는 “일본 사람들 교육이 철저했다. 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일본말을 가르쳤다. 학교에서는 일체 한국만을 쓰면 안됐다”고 말했다.

특히 김관수는 친일파에 대해 “죄가 아주 큰 사람은 곤욕을 치렀다”고 했다. 이에 사미자는 “일본 순사 거의 반 이상은 조선 사람이었다. 한국말을 다 하니까 일본 순사에게 일러바치는 게 한두 건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광복절에 대해서는 김관수는 강화도에서 해방을 맞았다며 “우리 집이 해방됐다는 걸 제일 먼저 알았을 것”이라며 “우리 아버지가 시골 우체국장이었다. 강화 전체에 2~3대 밖에 없는 전화가 우리 집에 있었다. 오후 1시에 아버지가 우체국에서 뛰어오시더니 어머니에게 급하게 말씀하셨다”고 설명했다.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역사의 흐름은 백범 김구 암살 사건으로 이어졌다. 당시 10살이었다는 사미자는 “내가 어떻게 문상을 해야 하나, 10살짜리가 암살범을 어떻게 죽여야 하나 했다. 백범 김수 선생님의 마지막 사저로 갔다. 높은 제단에 시신이 올려져 있었는데 90도로 예를 다하면서 내가 역사의 한 장면을 보고 갔구나 싶다”고 말했다.

1950년 발발한 6·25 전쟁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당시 남영동에 살았다는 김관수는 피난길 한강 철교 폭파도 목격했다며 “물에 둥둥 떠다니는 시체 등 별 걸 다 봤다. 중학교 1학년 때 시체를 엄청 많이 봤다. 나도 죽을 뻔 했다”고 털어놨다.
사미자는 “우리 집엔 그 앞에 있던 경찰이 숨으러 왔다. 그래서 엄마가 마룻바닥을 파 거기다 담요를 깔아주고 거기 드러누워 숨어 있었다. 마루 틈새로 눈이 반짝반짝 하는 게 보였는데 숨어서 나쁘게 안 됐다”고 이야기했다.

1·4 후퇴의 기억에 대해서는 사미자는 “11살 밖에 안 된 게 온종일 걸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나. 가다 보면 2~3살 먹은 애가 사람들만 쳐다보고 울었다. 이게 우리나라 비극이구나 싶었다”며 “걷고 걸어 충청도 청양에 도착해 석 달 정도 머물다 서울에 왔는데 한강을 막아놨더라. 도강증을 써줘서 다섯 식구가 서울에 와서 집에 가니까 마당에 파묻고 간 쌀 등 음식들이 비가 오고 그러니까 푹 꺼졌다. 다행히도 엄마의 힘으로 살았고, 지금은 가족 다 돌아가시고 사씨 집안 막내딸 나 혼자 남았다”고 말했다.
사미자는 1963년 동아방송 1기 성우로 데뷔했다. /elnino8919@osen.co.kr
사진 = 유튜브 영상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