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출신 사업가 심태윤이 연예계를 떠나 유흥가에 발을 들였던 과거를 떠올렸다.
8일 '이성미의못간다' 채널에는 "화려한 밤을 좇던 심태윤, 결국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라는 제목의 영상이 업로드 됐다. 이날 이성미는 심태윤을 만나 종교활동을 시작하기 전후의 이야기들을 나눴다.
이성미는 연예인으로서 전성기를 누렸던 심태윤의 과거 인기를 듣고 "그랬는데 왜 관뒀냐"고 궁금해 했고, 심태윤은 "오히려 저는 데뷔하기 전에 총애를 더 많이 받았다. '김건모 키운 사람들이 키워준대'부터 선배님들도 다 예뻐하고. 연예인이 아닐때부터 연예인들과 어울리고 준 연예인처럼 모든걸 누리고 살았다. 그러니까 제가 헝그리가 없었다. 그리고 노력하지 않고 제 재능만 믿고 모든게 다 쉽게 쉽게 갔다. 그러니까 저는 노력을 안 하고 제 재능만 믿고 1집 가수가 한 10집 원로가수처럼 행동하고 그랬다"고 털어놨다.

이어 "예능도 처음에 몇 년을 했는데 너무 많이 불러주시더라. 그러다가 나는 음악으로 인정받고싶다. 원래 (꿈은) 아티스트인데 뭐 이런 생각에 예능을 스스로 정리하고 심태윤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가명으로 '스테이(stay)'라고 이름을 만들었다. 심태윤의 영어 앞 글자다. 스테이라는 가명으로 발라드 음악같은걸 만들어서 발표를 했는데 그게 드라마 OST로 들어가면서 히트를 했다"고 떠올렸다.
이성미는 "손대는것마다 다 잘된다?"라고 놀랐고, 심태윤은 "다 잘됐다. 예능에서 음악 쪽으로 넘어가려고 했는데 저는 그럼 계속 잘될줄 알았겠죠? 계속 했는데 그 다음부턴 고만고만 하더라. 그래서 저는 사실은 모든 기대를 받고 연예인이 됐다가 그만큼 잘 안 되니까 제가 속이 공허하지 않나. 그 공허한걸 채우기 위해서 바로 화류계로 진입을 한다. 압구정동 청담동 이런데"라고 밝혔다.
이에 이성미는 "그때 압구정동이 뜨기시작할 때 아니냐"고 물었고, 심태윤은 "뜨기 시작할 때가 아니라 저 바로 선배들, 오렌지족 형님들이 갈고 닦아놓은 그런 분위기에 제가 편승을 하면서 내가 연예계에서 뜻한 바를 못 이뤘지만 화류계에서는 내가 뜻한바를 이뤄야겠다. 여기서라도 1등을 해야겠다. 그런 채워지지 않은 자존감을 그쪽에서 풀기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어느정도까지 풀었냐"고 묻자 "제가 그 쪽에서도 나름 승승장구를 한다. 그 당시에 옛날에 압구정동이나 이런데 포장마차 되게 유명했다. 그 포장마차에 가면 그때는 실내 포장마차나 텐트 포장마차나 이런데 가면 연예인들, 강남에서 유명한 (술집) 누나들 다 모이는 그런 핫플레이스들이 몇 군데 있다. 제가 만든 포장마차가 그런 곳이 됐다. 근데 그게 너무 잘 되고 그러니까 가라오케로 사업도 늘리고 이러면서 탕자로서의 삶이 본격적으로 열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해서 쭉 가다가 어느순간에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느낄때가지 갔다"고 전했다.
이성미는 "밤문화라고 하면 보통 오후 5시나 이때 출근해서 새벽 4시까지 옛날에는 밤장사를 했으니까. 그러면 낮에 자고 그랬냐"고 물었고, 심태윤은 "당연히 12시까지는 자는것 같다. 아침 6~7시에 자서 12시~2시쯤 일어나고 2~3시에 일과 시작하고 운동도 하고. 그때는 패션근육이라고 '왕'자를 만들어야한다. 예쁜 옷을 입어야하니까. 술먹고 헬스장 맨날 간다. 가면 그 동네 노는 애들이 다 모인다. 그게 시작이다. 거기서 운동하고 뭐 먹고 밤에는 밤 문화도 즐기고 그랬다"고 밝혔다. 이에 "안 지치냐"고 묻자 "힘이 너무 나더라"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후 이성미는 "그러다가 공허함이 몰려온 이유는?"이라고 궁금해 했고, 심태윤은 "사실 사람이 하고싶은걸 다 하다 보면 그 끝에는 채워지지 않은 공허함이 있지 않나. 그 공허함때문에 나는 되게 자유롭게 사는데 왜 마음이 허하지? 이걸 느낄때 쯤에 그게 32살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전 되게 많이 논 줄 알았는데 딱 32살에 그걸 강하게 느꼈고 32살에 제 인생을 바꾸는 어떤 사람을 만난다. 그게 차인표 형님이다. 저한테 멋있는 형의 기준을 바꿔주신 분이다"라고 밝혀 놀라움을 안겼다.
그는 "그때 연예계랑 화류계에서 본 제가 멋있다고 생각한 형들은 첫번째는 돈이 많거나 여자가 많거나 주식 정보를 많이 알거나. 그런데 끊임없이 그런걸 늘리고 차를 늘리고 주식을 늘리고 자산을 늘리고 여자를 늘리고 싶어하는 그런 형들이 되게 멋있어 보였다. 능력이 있어 보였다. 근데 어느날 인표 형을 만났는데 생명을 살리는 일을 같이 하자고 하더라. 어디 지진이 났는데 걔네들을 돕기 위해서 콘서트를 만들자. 너는 노래를 잘하니까 노래를 부르고 너는 춤을 추고 나도 뒤에서 율동을 할테니까 같이 하자 치킨 먹으면서 그런 얘기를 하는데 저한테는 그게 너무 신선했다. 여기는 그렇게 돈이 많은 사람이 더 벌려고 하는데 여기는 생명을 살리려고 이런 자리를 만들고 생명을 살리자는 얘기를 하네? 되게 신선한데 멋있다 생각이 들면서 빠져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래서 같이 해봤다. 너무 재밌더라. 신앙생활을 하고 도네이션 하고 봉사활동 하는게 하기싫은데 억지로 하는게 아니라 너무 재밌고 기쁘고 그걸 같이하는 사람들이 모였지 않나. 제가 그전에 만났던 사람들은 다 자기 유익이 1순위였다. 이거는 누군가를 돕기 위한 남의 유익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인거지 않나. 사람들이 일단 다 선하고 다르다. 내 유익을 찾으러 온 사람들이 아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같이 봉사활동 하고 교제를 하니까 너무 행복하더라. 그러면서 여기 있는 형들이 너무 멋있고 동료들도 멋있어서 제 환경이 바뀌기 시작했다"라고 달라진 생각을 전했다.
또 "그러다 어느날 차인표 선배님 집에 놀러갔다. 입양한 딸이 둘 있는데 인표 형님의 핸드폰을 갖고 노는거다. 충격을 먹었다. 제 핸드폰은 항상 잠겨있고 여자친구가 있어도 엎어져있다. 왜냐면 나는 새벽 2시고 3시고 '오빠 뭐해?', '오빠 갈게 기다려' 이런 전화도 하고 저는 여기에 모든 저의 비밀, 친한 여자동생들 비밀. 그때도 카운슬러 많이 했으니까 남의 비밀들도 있고 연예인 전화번호도 많고 항상 잠겨있고 엎어져있다. 근데 핸드폰을 어린 미성년자 자녀들이 가지고 논다는건 저한테는 있을수 없는 일인데 숨길게 없다는 뜻이지 않나. 그때 제가 머릿속에 어떤 단어가 딱 떠올랐냐면 '나는 내가 자유롭게 사는줄 알았는데 저게 자유구나. 숨길게 없이 사는게 자유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심태윤은 "나는 자유로운 사람이 아니라, 자유롭게 내가 다 살고 뭔가를 감추는 데 급급한 그런 삶을 살았으면 진짜 자유를 누리는 삶으로 가야겠다. 너무 멋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그때부터 핸드폰을 비밀번호로 안 잠가도 되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을 시작한거다. 그게 32살이다. 지금 생각하면 제가 51이니까 빨리 온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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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성미의못간다